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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11. 2019

다 커버린 몸, 마음이 기억하는 교훈

#개를훔치는완벽한방법 #김성호 #이레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어릴 적 생일파티를 기억한다. 생일파티는 내 부모님에게 테러와도 같았다. 어릴 때는 당연히 집에서 생일파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친구들을 무작정 우리 집으로 불러와 앉혔다. 이를 발견한 부모님의 표정은 몇 초 정도 굳어있다가 이내 체념한 듯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어느새 우리 집 거실은 주문한 배달음식들로 가득 찼다. 작전을 들키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금전적 피해는 컸으니 완벽한 테러 성공이다. 부모님은 프로였다. 친구들을 배불리 먹이고, 돌아가는 친구들 손에 기념품까지 들려 보내면서 의도치 않은 습격으로 파티가 끝날 때쯤엔 난 최고의 스타가 되어있었다. 북적거렸던 거실이 텅 비고 한바탕 난리였던 음식과 그릇들이 정리되자. 나는 만족한 듯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런 날 보며 부모님은 어이없어하셨다. 지금도 부모님은 그때를 생일파티가 아닌 생일 테러로 기억하신다. 영화 '개를 훔치는 방법'은 이런 생일파티 소란으로부터 시작된다.



월리의 모습 -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아빠와 함께 집이 사라져 버린 지소네 가족은 피자 파는 차 안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생일파티를 친구처럼 집에서 할 것이냐는 선생님 질문에 고민하던 지소는 고민한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친구 채랑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평당 500만 원이라는 아파트 임대 전단지를 보게 된다. 순수한 지소는 500만 원만 있다면 집을 구할 수 있다며 돈을 구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전단지에 사례금 500만 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강아지를 찾아주려 하지만 개는 이미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당돌한 두 소녀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개를 훔친다 → 전단지를 발견한다 → 개를 데려다준다 → 돈을 받는다 → 집을 산다 → 생일파티를 한다



  두 소녀는 신중하게 개를 고른다. 개를 잃어버려도 사례금을 걸지 않을 가난한 집이나, 개를 잃어버려도 금방 다시 사버릴 부잣집이 아닌 어중간한 부잣집의 개를 말이다. 또한 들고 가기에 적당한 크기를 고려해야 쉽게 훔칠 수 있다. 그러던 두 소녀는 레스토랑 마르셀의 주인인 노부인의 개 '월리'를 목표로 삼게 된다.




월리와 노부인(김혜자)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교훈

  누구라도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 된다."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다 커버린 우리는 이 교훈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절도는 발생한다. 어른들의 절도죄는 계획부터 마무리까지 치밀하다. 하지만 어른과 다르게 아이들은 계산이 빠르지 않다. 개를 훔치는 계획은 치밀할지 몰라도 그 뒷감당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순수한 아이들이 연기하기에 남의 것을 훔친다는 불안감, 훔치고 나서의 죄책감 등을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다. 김혜자도 최민수도 강혜정도 넘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큼 연기하고 거의 모든 영화를 아이들이 리드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점과 감정선을 통해 훔쳤을 때의 불안과 죄책감이 다 커버린 관객에게 전염된다.




극 중 대포(최민수)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연출한 감독은 아이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중간중간 화면이 넘어가는 부분을 크레용으로 표시한 부분도 아이들 영화라는 느낌을 물씬 나게 하지만 정말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아이의 시선으로 낮게 촬영한 부분이다. 카메라의 높이며, 시야각까지 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어른들보다 높거나 넓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키가 작은 탓에 낮은 곳에 익숙하고, 어른들은 갖지 못하는 세밀한 관찰력이 있다. 엎드린 채로 강아지의 모습을 감상한다던지 바닥에 누워있는 노숙자의 모습이 자세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지는 등 성인이 된 우리들에게 아이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엄마 정현 역(강혜정)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아이들이 나와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고 해서 '아이들 영화'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 이유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볼 수 있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영화를 '가족영화'라고 부른다.

  어떤 평론가는 '어떤 국가에서 특정 소재의 영화가 많이 소비되는 이유는 그 분야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가족끼리 서로 아끼고 단합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영화가 많은 이유는 가족애가 부족해서이고, 한국에서 판타지 같은 달달한 로맨스가 달달한 이유는 실제로 그런 사랑이 현실에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가족애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성호 감독도 한국에서의 가족애 부족을 진단하고 영화라는 매체로 하여금 다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게 처방한 게 아닐까?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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