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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Jun 03. 2019

백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백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글자 그대로입니다. 누군가는 "창업 3년 차인 네가 드디어 데스벨리(death valley)를 맞은 것이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나 올해 초 약속과 의무에 의해서 시작한 일 이외에 제가 더 사업을 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벌어 놓은 것을 몇 년 간 쓰다가 그마저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입니다.




  제겐 기획서를 쓰다 잘 안 풀리면 주변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괜히 주변이 말끔해지면 없던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저만의 루틴(routine)입니다. 그러다 올해 초에 우연히 발견한 노트에서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비유와 언밀(言謐)한 표현들이 담긴 과거의 독후감과 수필들을 발견했습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엄청난 독서광에다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겠다며 책을 낭독해 그것을 녹음하고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일을 핑계로 독서량이 1년에 채 2권이 되지 않습니다.




  글들은 더 엉망입니다. 기계가 찍어낸 빵에 정성이 담길 수 없듯 선정되기만을 위해 쓰인 기획서는 제 어떤 고민과 가치도 담지 못합니다. 사실 첫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인문학을 배우는 것 이전에 그것을 팔기 위한 기획서를 쓰고 있었고, 문화를 이해하기 이전에 그것은 팔리기 좋은 상품이 되어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면서 해왔던 기획이라는 작업이 돈벌이 수단 이외의 가치도 없으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저 나름의 계율(戒律)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30분 이상 독서하는 것, 커피를 줄이고 향이 좋은 차로 하루를 시작할 것, 하루를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할 것, 그것들을 글감으로 남기고, 글감들이 모아지면 글을 쓸 것! 엄격히 지켜야 하는 고행의 성격과는 달리 이런 행위들이 지금은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동안 현실이 안돼서 하고 싶은 것들을 부정해왔는데, 사실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현실을 부정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상황을 맞추느라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현실을 부정할 용기는 없었던 것이지요... 학부 때 배웠던 매슬로의 이론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배고픔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저만의 장르를 꿈꾸면서 말이죠.




  한자로 바쁠 망 [忙]은 마음 심 [心]과 망할 망[亡](망하다, 달아나다, 잃다, 죽다)가 결합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바쁘다는 것은 마음을 잃는 행위인 것이죠. 화제의 트윗이었던 "바쁜 게 얼마나 나쁘냐면 소중한 게 성가셔져"라는 말처럼 저도 바쁨을 핑계로 가장 가까운 것들을 구석으로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쁘게 돈을 번다고 해서 외면해도 좋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건강도,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요즘은 변하게 된 제 마음을 따라서 그들이 하루하루 각별해지고 있습니다. 바뀐 제 생각과 가치관을 설파할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주변 모두에게 의심과 걱정보다는 이해와 응원을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허름한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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