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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Aug 27. 2023

엘레나는 몰랐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엘레나는 알고 있다>>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친구처럼 지낸다는 건 또 뭘까? 나에게 친구란, 가끔 만나서 술한잔하며 온갖 세상사 성토하고, 힘들 땐 섣부른 위로보다 돈을 보태주고, 좋은 책 추천해주고, 생일이면 맛있는 음식과 꽃을 사주는 사람. 나를 알고, 알게 할 수 있고, 나도 알고 또 알고 싶은 사람. 엄마가 친구라면 세상사 성토는 못해도 돈이나 음식, 꽃 정도는 가능한데, 나를 알고 나를 알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중매체에서 그려지는 친구같은 모녀관계는 짜증난다. 같이 쇼핑하고 옷 골라주고 좋은 데 놀러가는 등 친구같은 모녀관계가 하는 일은 천편일률적이다. 여자들이 옷, 화장품, 가방 같은 거 쇼핑하면 그냥 친해지는 건가? 쇼핑 안 좋아하고 친구래도 옷 골라주는 것 같은 짓은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많다. 화장품 쇼핑 같은 거 말해 뭐해. 이딴 걸 함께 소비하는 걸로 여성의 친밀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다. 엄마와 딸은 취향을 공유하고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겠지만 친구가 되기는 매우 힘들다. 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엄마는 자식을 아는가? 자식은 엄마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는가? 이 대답도 부정적이다. 엄마는 내게 몸과 생명을 주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탯줄을 끊었으면 서로 분리되었음을 인식하고 각자의 삶을 잘 꾸리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얼마 전 엄마가 '난 네 속을 다 안다' 길래, 결코 그렇지 않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했다.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내 속의 5%도 안 된다. 엄마가 다 안다고 생각하게 냅둘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


엄마가 선을 넘으면(평생 그래왔지만) 그때마다 예의를 갖추시오!라고 엄격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딸이라고 막하려 할 때마다 못하게 했다. 차분히 따져서 '말해봐야 본전도 못 건진다'라고 체념을 하게 했다. 이게 엄마와 내가 조금이라도 친구처럼 보인다면 그게 가능한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엄마를 많이 미워하지 않는다. 다른 아들이 둘이나 있음에도 나를 아들처럼 대접해 키워주기도 해서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부모는 자식을 모른다는 거다. 자식 알기란 부모 입장에선 지칠 줄 모르고 계속 해야 하는 헛수고 같은 건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들의 연대와 성찰, 경험 나눔도 절실하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엘레나는 알고 있다>>는 그래서 더더욱 문제작으로 읽혔다. 소설 속에 온갖 성역할이 엉킨다. 어머니는 자기 딸을 잘 알고 있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사랑을 베풀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딸과의 말싸움이 의사소통 방법이며 딸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한다. 딸은 간병노동에 지쳐 있다. 게이 남편의 방어막으로 임신해야 하는 성역할을 담당한, 길가던 여자는 낙태도 할 수 없다. 다른 성역할들이 별의별 이유를 들어 낙태를 막았기 때문이다. 엘레나는 알아갈 뿐, 처음부터 알고 있진 못했다. 책에선 아무렇지 않게 건조하게 표현되는 엄마의 병세가 삶의 의욕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나마 짬을 낼 수 있었던 엄마가 미장원에 간 사이에 자신의 길을 간 마음, 그것은 또 얼마나 복잡했을 것인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는 계속 의심하지만 아무 소용 없다. 그만큼 딸은 멀리 있다. 엄마는 딸의 고통과 절망을 몰랐고, 소설의 제목 '엘레나는 알고 있다'는 슬프게도 엘레나가 딸을 제대로 몰랐음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읽힌다. 이게 많이 가슴 아프다.   

엄마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엄마라는 징글징글한 성역할을 어렸을 때부터 심사숙고하게 해서 결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성공했다. 그만큼 징글징글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조금이나마 단백해질 수 있다면 글쎄, 그것도 엄마 덕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왜 엄마 같은 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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