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냥 Oct 03. 2023

여행 떠난 후 처음 쓰는 글

여기, 이스탄불

지난 글에서 나는 9월에 어디에 있을까,라고 스스로 물었는데, 내 몸은 지금 이스탄불에 와 있다.


새벽 내내 천둥 번개가 매서웠는데 마침 숙소를 비워야 해서 빗 속으로 나와야 했다. 등 뒤로는 65리터 배낭,  양쪽 어깨엔 작은 사이드 가방,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태블릿. 풉.. 선녀옷을 입고 아이들 세 명을 챙겨 하늘로 도망간 선녀가 떠오른다. 나의 짐들도 지금은 선녀의 자식들만큼이나 소중하다. 먹고 입고 자고 기록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고 지고 다니고 있으니.   

비오는 이스탄불 카드쿄이 항구 풍경. 비오는 날 배낭과 내 몸을 놓일 장소를 구하는 데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터키 사람들 도움으로 하루하루 여행을 채워가고 있다. 튀르키예라는 이름이 잘 입에 붙지 않는다. 아무튼 친절한 사람들 덕에 하는 여행.



우선 여기 왜 와 있는지 물어야 한다. 연초에 계획했던 여행이 이사문제로 틀어지고 난 후, 좀 아팠고 붉고 선명한 수술자국까지 몸에 남게 되자 과거의 평범한 일상으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가기 어렵겠다 싶었다. 그렇게 막연히 인식하게 된, 내게 당도한 '삶의 끝' 같은 것. 젊은 날엔 젊음을 알 수 없으니 그랬겠지만, 참 어처구니없게도 내 인생이 아무리 소모해도 없어지지 않을 지루하기 그지없는 걸로 생각했지 뭐냐. 조금씩 소멸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전까진 말로만 이해했다. 아마 지금도 그런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생로병사의 진실. 이 앞에서 첫 번째 한 결심이 여행이었다. 불가역성을 마주할 용기는 애당초 없었다. 그냥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


덜컥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니 떨렸다. 진짜 가는 걸까 놀라는 마음이었는데, 대놓고 한숨을 쉬어댄 한 친구의 반응 때문에 빵 터졌다. 아직도 그 한숨의 의미를 이해하진 못 한다.  


남미를 여행 중인 마담 생망은 큰 힘이 되었다. 걱정일랑 접어두라며, 그 멀리서도 추위를 대비해 좋은 패딩을 사라고 돈까지 보내왔다. 여행경비를 보태주고 예쁜 신발과 스카프와 필요할 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귀걸이를 건네주고, 손 편지를 써주고 안녕과 행복을 빌어준 사람들. 걱정일랑 접어두라...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이만한 위로는 없다.  


그렇게 이스탄불에 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