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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Oct 06. 2023

아무리 먼 곳도 결국엔 도착한다

이스탄불 첫 숙소 찾아가는 길

이스탄불 행 비행기 안.


비행기에 앉아 있은 지 10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무리 먼 장소도 결국엔 도착한다. 그 시간이 아무리 괴로워도. MRI 엎드려 찍을 때가 생각났다. 언젠간 끝난다,는 생각만이 유효한 시간. 수속을 다 하고도 비행기에 타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기다리느라, 나중엔 그 사람의 짐을 빼느라 한 시간 넘게 비행기가 출발하지 못했다. 보딩 수속까지 하고도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의 사정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 아주 나쁜 일이 아니었길.


이번 여행은 남다르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먼 길을 가는데 남다르지 않은 여행이 어디 있겠냐만은. 배낭을 싸면서도 짐을 빼고 넣고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나이 든 몸이 감당해야 하는 어깨 통증과 매일 먹어야 하는 약과 나빠진 눈, 심해진 수면 불균형, 힘 떨어진 다리까지. 아마도 배낭을 멜 수 있는 건 이번 여행까지인 것 같다. 여행을 아예 못하게 될 때도 오겠지.


별로 아쉽진 않다. 이미 실컷 했고, 책상에 붙박혀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으니. 더 무거워진 약봉투를 묵직하게 챙기고 추위도 대비한 짐을 꾸렸다. 어쨌든 할 만했다. 보험 들고 환전하고 공항에서 돈 찾고 대중교통으로 숙소까지 가는 일까지 챙겨놓고, 숙소 주인과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대화하고 여행코스 챙기고 그 다양한 귀찮은 일을 처리했다. 여행준비가 많이 귀찮았다. 사실은 걱정이 많았던 것이기도 하고. 지금 남미를 여행하는 마담 생망의 '걱정이랑 접어두라'는 말은 내내 실용적 지침이 되었다. 마담은 아는 것이다. 먼 길 떠나는 사람의 복잡한 심정을, 걱정이랑 접어두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예전엔 쉽게 했던 일들도 검색부터 왜 그리 귀찮아지던지. 여행의 질은 검색에 들인 노력과 비례한다. 교차검색도 해야 한다.


걱정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갔고 나는 결국 비행기 안에 있다. 3개월 이상 여행할 준비를 했는데 한 달 이상 남은 약에 중복처방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비급여로 약을 비싸게 받아야 했고, 생각보다 환율이 많이 올라 여행 비용은 더 늘어났다. 새로운 건 딱히 없다. 무접점 키보드와 등긁개를 챙긴 게 다를까. 정을 준 식물이 죽지 않도록 물을 주는 사람부터 여행 중 발이 편해야 하니 신발 걱정까지 챙겨준 지인들 덕에 가능해진 여행.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일상의 한 부분을 진부하지 않음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지. 돌아갈 때쯤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었음 좋겠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드뎌 착륙 준비를 한다고 한다. 꾸역꾸역 견딘 덕분에 간 시간. 허공에 떠가는 티타늄의 폐쇄된 공간에서 먹고 싸고 자리에 차분히 앉아 견딘 덕에 간 시간.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이 꽉 막힌 공간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금방 패닉은 전염될 수밖에 없다. 가만히 가라앉은 상태로 사람들은 통제당해야 하니 우선 밥을 준다. 배 고프면 금방 흥분하기도 쉬우니까. 밥 주고 커피까지 주고 나서 불을 다 꺼버린다. 몇몇은 자기 자리에 등을 켜지만 대부분은 좁은 공간에 주어진 담요와 베개를 몸에 어떻게든 적용시키고, 역시 주어진 작은 화면 앞에서 귀에 뭔가를 꽂고 잠이 들거나 그냥 잠이 들거나 어떻게든 잠이 든다. 이코노미 석에서 비싼 좌석은 커튼으로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저들은 좀 더 편하겠지. 들인 돈만큼 노골적으로 차이나는 공간. 아예 안 보는 게 평정심을 유지하기도 좋다.


3시간 정도 버티니 불을 다 켜고 이번엔 피자 한 조각씩 준다. 뜨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지만 이번 배급은 거부해 준다. 또 불 끄고 재우는 시간. 피자에 수면제 같은 걸 타는 건 아닐까,라는 유치한 의심을 잠깐 했다. 그리고 또 밥 먹는 시간. 작은 식판 크기의 밥을 받아 들고 온순하게 밥상에 코 박고 묵묵히 또 먹는다. 그렇게 자기 좌석 안에서 가끔 몸을 비틀고 꿈틀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버티며 통제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10시간 넘게 이 많은 사람들을 말 잘 듣도록 길들이는 비행사 승무원의 노력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도착. 내리면 우선 짐 찾고 잘 왔다고 문자 남기고 환전, 시내로 가는 교통편 확인, 내려서 택시, 숙소 도착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 미리 그림으로 그려놓는다. 몇 시간째 깨있는 건지, 잠을 못 잔 상태로 멍해있다 비번이 틀렸다는 공항 현금지급기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여기저기 물어 시내로 나갈 버스 위치를 확인하고 물을 좀 마시고 배낭을 메고 좀 뒤뚱거리고 나니 이제부턴 나름 여행자.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는 피하는 편인데 말로만 듣던 이스탄불의 극심한 교통체증 덕에 버스 시간이 2배나 걸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한 아시아지구 카드쿄이 항구에 도착. 구글 지도로 이미 숙소 위치와 가는 법을 다 확인해 두었는데 하... 택시는 어디서 타야 하나. 버스가 도착한 터미널은 엉망진창이다. 버스가 너무 많고 사람들은 북적대고 차선이 복잡하다. 넘쳐나는 차량과 아무 데서나 무단횡단하는 현지인들, 많은 상점 간판에서 나오는 불빛과 아시아지구 카디쿄이 항구의 북적대는 느낌까지, 이 모든 생생함이 비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방향을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이 엉망진창을 벗어나야 한다. 이스탄불 공항은 모든 것이 비싸다고 해서 유심을 사지 않았는데 바보짓이다. GPS가 알려주는 대로 우선 위치 확인. 항구 근처 통신가게는 영업시간이 지났다고 심카드를 안 판다. 깔아놓은 비딱시 앱은 무용지물.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택시 땜에 쩔쩔매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모드'로 가만히 서 있으니 도미노피자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은 청년이 와서 도와준다. 이스탄불 첫 번째 천사 등장. 현장에서 잡으려 했다가 어플을 켜고 여기저기 전화도 해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 숙소 주소를 받아 든 청년이 검색을 하고 경로를 잡더니 이 정도는 걸어갈 수 있다고 길을 알려준다. 끄응. 한국에서 이미 챙겨 온 구글지도의 경로는 기차역을 크게 돌아가라고 알려줘서 택시를 타려 했던 것인데, 중간에 가로질러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어디까지 구글에 의존할까나.  


비행기 안에서 어렵게 외운 감사합니다 터키말, 테시큘레 에데림을 더듬더듬 말하고 마음을 다잡고 걸어본다. 공항에 도착해 현금지급기까지 찾아가는 일부터, 길 건너는 일까지 사람들 도움 없이 된 일은 없다. 택시 잡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고, 차들이 뒤엉키고 무단횡단이 난무하는 곳에서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함께 걸어줬다. 피자배달 오토바이 청년이 나타났고 숙소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조금씩 또 꾸역꾸역 배낭을 지고 걷다 보니 숙소까지 가는 길이 감이 잡힌다. 이미 어두워지고 낯선 땅이지만 환대와 호의를 충분히 겪었다. 실감 나기 시작하는 여행.


숙소 가는 길, 홍대 뒷골목 같은 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주말의 여흥을 즐기고 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모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언제까지 택시 잡으려 안달했을까. 혹은 알지도 못하는 길을 두세 배 돌아 걷느라 지쳤을까. 집에서 새벽 6시 20분에 나와 20시간 넘도록 깨어 있는 상태. 너무 오래 앉아 있기만 했는지 엉덩이에서 두드러기가 났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인터넷 없이도 꾸역꾸역 숙소에 왔다. 예전 종이지도만 들고 여행했던 생각도 나고. 어두컴컴해 좀 무서웠지만 생각보다 안전한 느낌. 길에 고양이가 많고, 사람들이 함께 고양이를 돌본다. 고양이에게 안전한 도시. 동물에게 다정한 도시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다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물을 사러 나갔더니 터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점방이 근처에 있어 검은 올리브와 물, 유명한 에페즈 맥주를 샀다. 에페즈 맛에 반했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숙소로 향하는 길 - 안도감이 들게 하던 이스탄불 첫 풍경

할아버지 점방에서 구매한 검은 올리브. 난 초록 올리브 배척 파.

숙소에 누워 종종 천장 사진을 찍는다. 잠들기 직전 뭔가 채워지지 않은 이스탄불 첫날 밤 천장 풍경.

고마웠던 피자배달 청년의 스마트폰 화면. 내가 길을 잃을까봐 길을 차분히 설명해주고 가는 길을 꼼꼼하게 체크해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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