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강압'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꼬이게 한다

사회문제를 규제로 해결하려고 하면 숨은 함정이 존재한다.

by 헤르메스의 편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구름과 햇님은 서로 다른 전략을 썼다.

구름은 강한 바람을 불어 외투를 억지로 벗기려 했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옷깃을 꼭 여미며 저항했다.

반면 햇님은 뜨거운 햇살을 내리쬐어, 나그네가 스스로 외투를 벗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 이솝우화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건 ‘강압’이 아니라 ‘유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백한 자연의 섭리를 자주 잊는다.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일으킨 사건들이 터지면,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곧장 규제와 금지를 고민한다.

‘그런 행동을 못 하게 막자’는 건 우리의 상식과도 맞고, 정치적으로도 이해하기 쉬운 해법이다.

실제로 정치인들도 민심의 분노를 빠르게 달래고 지지를 얻기 위해,

새로운 규제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규제들이 의도한 결과를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1920년대 미국은 알코올이 범죄와 가정 파탄, 생산성 저하를 유발한다고 보고,

술의 제조·판매·운송·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금주법(Prohibition)’을 시행했다.

의도는 분명했다. 모두가 술을 끊고, 사회가 더 건강해지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싶었고, 합법적인 경로가 막히자 암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밀주가 퍼지고, 마피아와 범죄조직이 폭리를 취했으며, 오히려 폭력과 부패가 증가했다.
결국 미국은 13년 만에 금주법을 폐지했다.

사람의 욕망을 ‘금지’만으로 억누르려 했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최저임금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최저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이 제도는, 명분만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급격한 인상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그에 따라 고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로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나아질 수 있지만,

취업 기회를 잃은 사람은 아예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의도했던 ‘보편적 생활 보장’은 일부만 누리고, 나머지는 더 심한 양극화를 겪게 된다.


기업 규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부적절한 행동을 막겠다는 의도로 각종 규제를 강화하지만,

현실에서는 대형 로펌을 활용해 정교하게 법망을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곳들이 많다.
결국 돈 많은 대기업은 유연하게 빠져나가고, 자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만 규제에 갇히는 구조가 된다.

그 가운데, 로펌들은 이익이 늘어난다. 따라서 로펌들은 규제가 늘어날수록 속으로 좋아한다.

규제가 약자를 보호하려다, 오히려 강자에게 유리한 게임의 룰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행위 수준에서만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오는지, 그 뒤에 어떤 사회 구조가 있는지는 분석하지 않는다.
단지 눈앞에 드러난 행위만 막으면 된다고 믿는 것, 그것이 더 익숙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간단히 통제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그런 본성 자체가 “틀렸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 본성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로 삼아야 할 요소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려는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탐욕”이라고만 비난하면서,

규제로 찍어누르려 하면 시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전매 제한, 대출 규제, 세금 인상 등이 반복되면 오히려 공급은 위축되고,
결국 희소성이 커진 일부 부동산 가격만 더 치솟는 결과가 나타난다.

규제는 본성은 그대로 둔 채,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억누르려는 시도인 경우가 많다.


사실 구조를 바꾸고 햇님처럼 유인을 설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본성에 기반해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복잡한 이해와 깊은 통찰,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정책도 설득이 어려워지고, 설명이 길어지니 정치적으로는 ‘효율이 떨어지는 전략’처럼 보이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은 단순하고 시원해 보이는 ‘규제’에 손이 간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햇님이 아닌 바람처럼 문제를 대하게 된다.


물론 모든 규제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압이 필요한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바람이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나그네는 외투를 벗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과 구조를 고려한 '햇님 같은 해법',

이제는 우리가 그런 방식에 더 많은 상상력과 힘을 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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