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달러 패권에 집착하는가
미국은 왜 세계 최강대국일까?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생각한다.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세계 1등 기업들이 전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천연자원, 농산물 등이 풍부한 비옥한 영토를 가졌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고, 각 분야 세계 1등 기업들이 미국에 있다는 것은
미국이 최강대국이 된 '원인'이 아닌
최강대국이 되고 난 이후의 '결과'에 가깝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한 '원인'은 일단 영토 자체가 주는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천연자원과 농산물 등이 풍부한 비옥한 영토를 가졌고,
자기를 견제할만한 나라가 바로 옆에 붙어 있지도 않고,
각종 전쟁터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쟁의 피해를 입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특히 이것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이유에 가깝다.
그것은 바로 기축통화라고 불리는 달러의 지위다.
기축통화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세계인의 기준이 되는 통화를 말한다.
우리는 기축통화가 달러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 개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달러는 미국이 자국 내에서 쓰는 법정화폐일 뿐이기 때문이다.
달러라고 해도 전세계인이 그 화폐를 신뢰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달러가 신뢰받는 화폐라는 인식을 전세계에 심어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또한 중국이나 유럽도 호시탐탐 자국 화폐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강대국들은 왜 그토록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갖고 싶어할까?
그것은 기축통화국이 가진, 말 그대로 '사기적인 특권' 때문이다.
첫째, 다른 나라들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소비가 가능하다.
보통 한 나라가 수입을 늘리면 외화를 벌기 위해 수출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외화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은 외화를 '찍어낼' 수 있는 나라다.
즉, 무역 적자가 나더라도 자국 통화로 결제할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없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가족이 소비를 하려면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은 마치 가족들이 일을 거의 안하고 가장이 집에서 종이에 돈을 그려서 밖에 나가 물건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구조다. 상상만 해도 너무 편하지 않은가?
둘째, 고통은 다른 나라로 넘기면서 경기부양의 열매는 자기들만 누릴 수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자금을 공급해 경제를 부양하려 한다.
하지만 돈을 과도하게 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므로 물가가 올라 국민들이 고통받게 된다.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따라서 재정,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데 기축통화국은 다르다. 자국에서 푼 돈이 전 세계로 흘러가며 인플레이션이 세계로 분산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인플레이션 고통을 많은 부분 전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자국의 큰 고통없이 훨씬 쉽게 경기부양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셋째, 노력하지 않아도 금융중심지가 된다.
한 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면, 다른 나라들은 그 통화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세계의 수 많은 무역거래들이 기축통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러 외환보유고가 부족하여 1997년 IMF 국가부도 위기 사태를 맞았던 사례를 기억하라.)
하지만 그냥 쌓아두고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면 실질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적 손해를 막기 위해 이자를 받는지, 배당을 받는 식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
따라서 그 통화 기반의 금융상품들에 투자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국가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세계 자본의 중심이 되고,
(지금 뉴욕 월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것처럼)
그 국가는 거대한 금융회사 수수료 수익들과 막대한 세금 수입을 통해 다시 발전한다.
다른 나라들은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온갖 규제 완화와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하지만(그래도 안된다.),
기축통화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떤가? 미국이 왜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어 했는지,
왜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미국의 달러는 언제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그것은 1944년에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미국 뉴햄프셔의 작은 시골 마을 ‘브레튼우즈’에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모였다.
이 회의는 미국이 주도했는데, 당시 미국은 이미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요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본토가 전쟁터가 되지 않았고,
세계 금 보유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이 전쟁으로 초토화될 때, 미국은 오히려 군수물자를 수출하며 생산과 기술력을 강화했고,
이것이 경제적으로 세계를 압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던 이유가 되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일시적으로 갖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자기들이 만든 규칙을 세계 각 국에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첫째, 달러의 가치는 ‘금’에 고정한다.
둘째, 모든 나라의 화폐는 '달러 가치'에 고정한다.
이 말을 쉽게 풀어쓰면 "달러는 금처럼 신뢰있는 화폐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는 달러를 신뢰하고 달러를 기준으로 무역을 하자. " 라는 뜻이다.
미국이 막대한 금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언제든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테니 신뢰하라는 것이다.
이미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유럽은 반대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미국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세계 경제의 중심 화폐는 달러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1944년)였다.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달러는 국제무역의 중심 화폐가 되었고,
세계는 무역을 하려면 달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화폐의 기능을 넘어, 통화로 구현된 지배질서였다.
미국은 자신이 찍어낸 종이(달러)로 세계의 자원을 사들였고,
외국은 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미국은 그 자금으로 인프라를 확장하고, 핵무기를 만들고,
군함과 항공모함을 띄우는 등 군사력을 키우면서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힘을 키웠다.
하지만 이 질서에는 오래전부터 균열의 조짐이 있었다.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은 1960년대에 이렇게 경고했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는, 세계의 통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돈을 해외로 수출해야 한다.
돈을 해외로 수출하는 방법은 무역적자(예: 미국이 물건을 사고 달러를 외국에 지불)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적자가 누적될수록, 언젠가는 그 통화의 신뢰가 흔들릴 것이다.”
이것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다.
달러가 넘쳐야 세계경제가 돌아가지만,
달러가 넘칠수록 사람들은 언젠가 그 종이 쪼가리 가치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달러는 구조적으로 신뢰의 위기에 노출된 통화였던 셈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며 달러에 대한 신뢰가 붕괴될 뻔한 위기가 찾아온다.
1950~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 대규모 복지정책(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등을 통해
대규모로 달러를 발행했고, 시중에 많은 달러가 풀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독일 등 국가들이 달러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미국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에 응하면서 미국이 보유한 금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달러에 대한 신뢰도 붕괴될 상황에 처했다.
결국,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신뢰의 기초가 "금"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로 바뀌게 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을 금처럼 신뢰하겠는가?"에 대해 미국이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도, 달러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왜일까?
그 비밀은 석유에 있었다.
1974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리에 협상하여, 석유는 반드시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만들었다.
전 세계 국가들은 석유를 얻으려면 무조건 달러가 필요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은 달러에 대한 인위적인 수요를 창출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페트로달러 시스템(Petrodollar System)’이다.
결국 오늘날에도 세계는 여전히 미국의 달러 시스템 안에서 숨 쉬고 있다.
달러로 결제하고, 달러로 투자하며, 위기 때는 다시 달러를 찾는다.
미국은 이 거대한 유동성 시스템의 중심에서 국채를 발행하고, 금융 제국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 제국은 계속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은 달러 공급을 위해 여전히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중이며,
그 적자 누적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계속 시험대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통해 어떻게든 무역적자를 줄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미국은 달러를 ‘정치적 무기’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2020년에 있었던 러시아, 이란, 중국 등에 대한 '국제결제망 차단(SWIFT 제재)'은,
달러에 의존한다는 것이 곧 미국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는 사실을 각국에 각인시켰다.
그 결과,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기반의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러시아와 인도는 금이나 자국통화로 거래하며, BRICS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논의 중이다.
이렇게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최근 미국은 새로운 디지털 통화기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달러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이다.
코인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가상자산이다.
다만, 일반적인 가상자산과는 달리 달러와 1:1로 연동되어 가치가 안정적, 즉 스테이블한 특징이 있다.
만약 발행주체의 신뢰도나 규제 환경 등이 잘 갖추어져 안정성과 신뢰만 확보된다면,
외모만 코인일 뿐이지 사실상 달러나 다름없게 된다.
이 코인은 전 세계 어디서든 빠르게 결제 가능한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러한 특징에 착안하여 미국은 디지털 시대의 달러 패권을 이어갈 수 있는 열쇠로 보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과 달러 패권의 만남.
그것은 미국의 새로운 패권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려 한다.
디지털 시대, 미국은 어떻게 달러의 왕관을 지켜내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