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이 몰려온다.
나는 지난 글에서, 미국이 왜 그토록 달러 패권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기존의 달러 시스템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새로운 수단을 통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지난화 참조)
이번 글에서는 그 스테이블 코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미국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싶어 하는지를 다뤄보려 한다.
가상자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둘은 가상자산 중에서도 비교적 신뢰받는 대표 주자지만,
가격이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널뛰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안정적인 화폐로 쓰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가격이 안정적인 코인’이라는 모순된 조합을 현실로 만든 묘한 가상자산이 등장했다.
그게 바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일단 스테이블 코인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달러 가치와 연동된 코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화가치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달러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유통량의 99%나 된다.(25.6.18일 기준)
사실상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으로는 테더사가 만든 USDT, 서클사가 만든 USDC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스테이블 코인은 대부분 ‘1코인 = 1달러’가 되도록 설계된다.
그렇다면 이 코인은 어떻게 ‘1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발행사가 코인 발행량만큼 달러 자산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1코인을 1달러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스테이블 코인 1개를 발행사에 반납하면,
그 회사는 그 코인을 1달러로 바꿔주고, 코인은 소각(폐기)된다.
발행사는 실제 보유하고 있는 달러 자금을 은행예금, 미국 국채 등으로 보관하면서 이자 수익을 낸다.
이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디지털 지갑 속의 ‘달러’가 되는 셈이다.
자, 여기서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매력적인 점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발행회사가 달러 자금을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지속적인 재정적자와 국채발행 남발로
국채를 사줄 새로운 수요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들이 새로운 미국 국채 수요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재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들이 갖고 있는
미국 국채 규모(1,200억 달러 이상)는 독일(20위, 1,114억 달러)보다 크다.
스테이블 코인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 정부가 좋아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 결제, 거래소 거래,
디지털 지갑 간 전송 등으로 자유롭게 유통되며 거래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의 거래는 기존 은행 중심의 전통적인 금융인프라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라는 기술을 활용하여, 은행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분산원장이란 수 많은 컴퓨터가 코인거래 기록을 함께 저장하고, 서로 감시하면서 거래기록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술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봤을 블록체인도 분산원장 기술 중 하나이다.
이 때 스테이블 코인의 거래는 기존의 달러 거래보다 압도적으로 편리하다.
예를 들어 기존 은행 결제 시스템으로 우리 나라에서 해외로 달러를 송금한다고 해보자.
보통 해외로 달러를 보내려면 1~3일이나 걸리고, 수수료 역시 수 천원~ 수 만원이다.
게다가 해외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서류 제출과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은 성가신 절차들도 필요없고, 송금도 몇 초~ 몇 분이면 완료되며,
수수료 역시 건당 수십원 수준밖에 안된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사용 가능하다.
이러한 엄청난 장점들 때문에,
금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고,
자국 통화가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국 화폐 대신 스테이블 코인이 일상적인 금융거래를 대체하게 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는
USDT가 사실상의 생활화폐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서 엄청난 통화주권의 침해인 것이다.
자국 통화를 명시적으로 폐지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달러가 국가 화폐처럼 바뀐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노린 새로운 달러패권 영향력이다.
은밀하게 취약한 국가들의 통화주권을 빼앗고, 달러로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테이블 코인으로 우리나라의 통화주권도 빼앗긴다고 볼 수 있는가?
일단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핀테크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코인이 아니어도 이미 간편결제, 실시간 계좌이체 등 편리한 지급결제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원화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같은 국가들의 화폐보다 훨씬 신뢰가 있는 화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국내에서 원화를 사용하지, 달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원화를 대체해서 국내에서 거래될 가능성은 적지만,
우리나라와 해외 국가간 거래를 할때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기존 달러 송금 시스템보다 스테이블 코인 거래시스템이 압도적으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국환거래법으로 규율되는 우리나라의 외화관리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기존 달러 송금 시스템으로 정부는 외환거래를 감시하는데, 그것을 회피해서 거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테이블 코인이 국내에서 발행되거나 유통되고,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나 국내 통화량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반대로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움직이면 통화정책 효과는 줄어들 수도 있다.
통화주권을 뺏기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미국 입장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은 폭탄이 될 위험이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이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발행회사가 사실 전통적인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믿을만한 회사인지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만약 발행회사가 달러를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만큼 쌓아두지 않는다거나,
자금을 횡령하거나 파산해버리면, 기존 스테이블 코인들은 휴지조각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발행회사를 못 믿어서 코인을 전부 달러로 바꿔달라고 앞다투어 달려들어도 문제다.
발행회사가 달러를 충분히 쌓아뒀더라도, 그 달러를 예금이나 미국 국채 등에 투자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달러환전 요구에 응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예금해지와 국채 투매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멀쩡한 금융시장에 큰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을 규율한 GENIUS Act 법을 25.6.17일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보다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한 달러패권 유지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은 관찰의 시기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 패권이 어떻게 흘러갈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지
계속 조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