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목숨에 가격을 매길 수 밖에 없던 순간에 난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털 알러지가 있다.
털이 많은 개나 고양이가 가까이 있으면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코는 퉁퉁 붓는다. 숨쉬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쓰다듬고 안아주는 걸 좋아해서
종종 애완동물을 억지로 키우곤 했다.
하지만 결국, 알러지라는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은 더 이상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키웠던 고양이가 떠오른다.
가장 마지막에 키운 애완동물은 터키시안 앙고라 종류의 고양이였다.
털도 하얗고 생긴 것도 정말 그림처럼 이뻤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건 시크한 태도였다.
가까이 가면 하악 거리면서 날 쫓아냈고,
멀리 떨어지고 나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이 시크하게 다가와서
내 키보드 위에 털썩 누워버리고 먼 산을 쳐다보기도 했다.
먹을 거 달라고 할 땐 가관이었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다가와서 내 다리에 자기 머리를 스윽 문지르면서 애교를 부렸다.
난 그런 시크한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고양이가 보이질 않았다.
문도 잠겨있는데 이 애가 어딜 갔을까 생각하며 집안을 뒤지던 와중에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날이 좀 더워서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잤는데,
고양이가 그만 그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 집이 아파트 10층 높이라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을까봐 깜짝 놀라며
베란다 밑 1층 풀밭을 찾아다녔다.
머지 않은 곳에 고양이가 웅크리며 애처로운 울음소리로 자기 위치를 알렸다.
고양이를 찾아내고 몸을 살펴봤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아파트 10층 높이인데 다치지 않은 것을 보고 난 고양이의 위대함(?)에 새삼 놀랐다.
그렇게 고양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날부터 고양이가 이상했다.
음식을 줘도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이 늘었다.
일단 놀라서 그랬겠지 생각을 하고 배고프면 먹을거다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고양이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더니 초록색 물똥을 쌌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거기서 진찰을 하던 의사선생님은 뜻밖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10층 베란다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하셨죠?
차라리 떨어지면서 그 충격이 다리로 가서 다리가 몇 개 부러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데 떨어질 때 충격이 전부 내장으로 가서 지금 내장이 거의 다 망가졌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멀쩡한 내장이 없네요.
초록색 물똥은 아마 내장에서 나온 피였을 겁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먹지를 못했던 거에요."
너무나 놀라서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해요? 수술이라도 받아야 하나요?"
"그렇긴 한데...내장이 너무 많이 망가졌어요. 이식 수술이나 그런걸로 살릴수는 있겠지만...
수술비가 아마 몇천만원 나올거에요..그냥 고양이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난 고양이를 살리는 데 몇천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잠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학생이었기에 그만한 큰 돈이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 살린다고 부모님께 몇천만원을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우리 집안이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고양이는 자기 운명을 다했음을 깨달았는지 대화하는 우리를 힘없이 한참동안 바라보다
그 상태로 병원에서 죽고 말았다.
축 늘어진 고양이를 데리고 말없이 난 동생과 함께 밖을 나왔다.
우리는 고양이를 뒷산에 묻어주기로 했다.
양지바른 곳에 고양이를 묻어줄 때만 해도 동생과 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양이를 묻고 난 잠깐 친구들 만나고 오겠다며 외출을 하였다.
사실 외출을 한 게 아니었다.
동생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거다.
난 한참을 오열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비애감에 울었던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잤다는 자책감, 고양이가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안심하고 웃었던 내 무지함,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수술비를 듣고 살려야 하나 망설였던 나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죽어버린 고양이를 보고
슬픔 마음과 함께 순간 안도감이 생겨났던 나란 존재에 대한 혐오감 등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생명의 목숨, 사람의 목숨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말이 멋있게 들렸고,
나 역시도 그에 동의하는 바였지만
진짜 내가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생명의 목숨엔 어느 정도 가격이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고양이의 목숨은 몇천만원까지는 안되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좋았고, 난 고양이를 끝까지 돌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몇천만원을 써야한다는 사실에 망설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위선적인 내 모습을 혐오하며
우울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감정을 좀 더 추스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비애감에 휩쓸려 지나치게 나를 몰아붙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명에는 값이 없다”는 말은, 어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것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 말은, 생명의 가치를 늘 소중히 여기라는 태도에 대한 선언이지, 겉으로 드러난 표현처럼 생명의 가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생명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
그 문장은, 나같은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을 향한 말이 아니라
자기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타인의 생명은 쉽게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그 고양이를 진심으로 아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사고 때문에 우리 가족의 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데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앞섰을 뿐이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아프게 남아 있지만,
그만큼 생명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이기도 했다.
내 삶의 터전까지 흔들리게 하면서 남의 목숨을 구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남의 목숨이 소중한만큼 내 목숨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목숨이 소중한 걸 아는 만큼,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함부로 대하고 살지 말자는 게 내 깨달음이다.
지금도 그 때 나에게 시크한 매력을 뽐냈던
그 고양이가 종종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