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물건이 무조건 다 좋다고 볼 수 있을까?
“비싼 게 좋은 거야.”
이 말은 얼핏 단순한 듯 보이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가설이 얼마나 자주 들어맞는지를 안다.
비싼 과일은 달고, 비싼 옷은 핏이 좋으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내는 음식은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을 많이 낼수록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싸게 뭔가를 얻고 싶을 땐 그만한 대가를 요구받는다.
할인쿠폰을 받기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사진을 찍어 리뷰를 올리는 식의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결국 고민 없이 좋은 것을 얻고 싶다면 돈을 더 내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좋다”는 말을 반복한다. 돈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은 정말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물건의 가격은 보통 그 물건의 '내재가치'를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과일, 옷, 음식처럼 직접적인 효용이 있는 것들은 그 가치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물건에 돈을 쓰는 걸 아깝다고 느끼지 않는다.
비싼 옷은 확실히 맵시도 나고 오래 입는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그만큼 맛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내재가치가 높은 것에는 아낌없이 쓰자’는 철학이 생겼다.
하지만 모든 가격이 내재가치만 반영하지는 않는다.
어떤 물건은 ‘앞으로 더 비쌀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값이 오른다.
대표적인 예가 강남 아파트다.
물론 교통, 교육, 상권 등 다양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이유는 미래의 기대수익, 즉 ‘투기적 가치’ 때문이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 물건을 사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비쌀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때때로 커다란 거품을 만든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유행처럼 번졌다.
귀족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튤립 구근(알뿌리)을 사고팔기 시작했고,
몇몇 희귀 튤립은 집 한 채 값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었다.
사람들은 튤립이 계속 오를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이 가격을 밀어올렸다.
하지만 거품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어떤 날 갑자기, 아무도 튤립을 사지 않기 시작했고, 수천 명이 한순간에 전 재산을 잃었다.
튤립은 여전히 예쁜 꽃이다. 하지만 그 꽃잎에 수백 배의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는 탐욕과 기대 때문이었다.
세 번째는 가격 자체가 가치를 만드는 경우다.
명품가방, 시계, 슈퍼카 같은 것들.
이 물건들은 내용물보다 ‘얼마짜리인가’가 중요하다. 강남 아파트도 이런 면이 있다.
가격이 높은 만큼 사람들은 그 물건을 스스로 가치 있게 느끼고, 남들 앞에서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한다.
나는 이것을 ‘허세가치’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마치 사회적 신호 같기도 하다.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보여주는 도구.
그러니 진짜 그 물건을 좋아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할 물건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남들이 원하니까, 나도 원하게 되는 것. 이런 욕망은 내 기준에서는 ‘왜곡된 욕망’이다.
나는 왜 명품을 사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네가 살 능력이 없으니까 정신승리하는 거야.”
불쾌한 말이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난 강남아파트를 살 능력이 안된다.)
그러나 나는 명품 시계나 외제차, 고급 가방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지 않는 이유는, 내 마음에서 진짜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남들의 시선을 사고 싶어서 소비하는 건 나에게 의미가 없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다는 것은
사실 평소에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뚤어진 마음을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낮은 내 존재가치를 높인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명품이 없었을 때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지 못하니,
명품을 통해서라도 친절을 받고, 우러러보는 시선을 느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품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나니
더더욱 명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욕망을 구성하는 세 가지 힘
나는 물건의 가격을 '내재가치 + 투기적 가치 + 허세가치'의 세 가지 가치의 조합으로 본다.
나는 내재가치가 큰 물건을 좋아한다.
음식은 비싼 것이 맛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고, 옷도 좋은 원단은 시간이 지나도 티가 난다.
반면, 투기적 가치나 허세가치가 큰 물건들은 왠지 내 삶의 중심을 빼앗아 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나는 그런 가치들이 만들어내는 욕망이, 우리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물건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망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