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7일 1. 이번에 한국에 갔다가 아이들과 헌책방에 갔다가 하루키의 수필집 <시드니>를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무라키미 하루키는 겉멋 든 제목의 뭔 소린지 모를 소설보다, 담담하지만 소소한 재미를 까칠하게 담아내는 수필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미 그는 자신의 글에서 본인 스스로를 매우 까칠한 일본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그의 수필이나 여행기의 팬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번 역시 실망감을 주지 않았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며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 너무 소소한 나머지 길거리 가다가 개똥 밟은 이야기까지 담아내는 그의 수필집은 정말 웬만한 만화책보다 재미있다. 오늘 바람도 쐴 겸 캄포스 조르덩에 왔다가 점심을 먹고 한적한 벤치에 앉아 <냉정과 열정사이> OST를 들으며, 한국에서 사 온 <시드니>를 읽었다. 그가 묶고 있는 호텔 벨보이에게 세탁소가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벨보이가 멈칫하더니 '라운디'(Loundry를 굳이 줄여서 이야기함)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니 마음대로 사세요.'라고 속으로 이야기했다는 부분에서 혼자 빵 터졌다. 귓속에서는 준세이가 아오이를 그리워하는 듯한 진지한 첼로음이 파지는데, 그의 입담 적어도 대학 때 만났을 때보다 더 배는 까칠해진 것을 보면서 웃고 있다니! 한참을 즐겁게 읽었다.
요즘은 그런 글들을 쓰고 싶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을 특유의 내 감성으로 담아내고 싶은데, ㅋㅋ 아직 그러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많다. 하지만 나도 그의 책 컨셉을 모방해서 O viagem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가족이 함께 있지 않은 무료함과 외로움을 달래 보려고 한다. 하루키 같은 글을 쓰고 싶다.
2. 깜포스 조르덩에 왔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통화하고, 오랜만에 운전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좋은 공기로 한국에서 먹은 세포까지 침투한 미세먼지를 밀어낼 겸, 캄포스 조르덩에 왔다. 깜포스 조르덩의 가을은 참 멋지다.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붉게 물드는 플라타너스 잎들과 한적함에서 느껴지는 가을의 허전함 등...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인데, 가을의 멋스러움을 품은 멋진 동네라고 생각한다. 무한 창작욕구를 부르는 가을 하늘을 보며 걷다가 잠깐 길거리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폰으로 들리는 첼로 음에 집중하며 하늘을 본다. 묵직한 첼로음은 가을 정취를 더욱 고조시킨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그들이 함께 하지 않지 않아 지금 순간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 오히려 감사했다.
3. 일주일 중에 월-금은 2주 스케줄이 미리 잡힐 만 큼 바빠졌다. 가끔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이 순간이 언제나 마무리될까라는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바쁨에 감사한다. 하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유가 생겼다. 한국에서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며 지내는 아내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그 수고로 인해 주말은 적어도 혼자 시간을 보낸다. 직원들도 혼자서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책도 읽고, 가끔 게임도 하고, 낮잠도 자고, 에스프레소 기기로 커피도 만들어 마시고 또 가끔 못 들었던 음악도 찾아 듣고... 요즘은 다시 포르투갈어 공부도 시작했고,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허락한다면 악기도 하나 배울까 생각 중이다. 물론 이도 아이들과 아내가 오기 전까지만 허락된 시간이다. 참 와이프에게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