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 파스타
이탈리안 식당에서 점심 메뉴를 시켰다. 까르보나라 파스타라는 글자만 보고 그 메뉴를 시켰는데 면이 아닌 밥이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메뉴를 잘못 시켰나?' 그런데 먹어보니 까르보나라가 맞았다. 밥처럼 생긴 것은 쌀알이 아니었다. 펜네나 다른 면 모양은 많이 보았지만 쌀알처럼 생긴 파스타 재료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 다시 그 식당을 찾아보았지만 점심 메뉴가 매번 바뀌어서 그 메뉴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슈퍼에서 비슷한 모양의 파스타 재료를 찾았다. 찾아보니 Orzo 파스타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냉큼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리 어려운 파스타도 아니었다. 시판 크림소스에 닭가슴살 정도 들어가면 파스타가 완성될 것 같아 보였다.
일단 닭가슴살부터 꺼내서 볶기 시작했다.
깜빡했다. 파스타 익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부랴부랴 끓는 물에 파스타를 넣었다.
시판 소스를 넣었는데 비주얼이 생각보다 못하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 많은 양을 맛없게 만들면 어쩌지?
그런 예감은 어찌나 틀리지 않는지. 팬을 뛰쳐나올 만큼 어마어마함 양의 크림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나름 데코레이션도 신경 쓰고 치즈도 뿌렸는데 영락없는 개밥 신세다. 다들 이게 뭔가? 하는 눈빛으로 식탁에 앉았다. 고생한 아빠가 안쓰러웠는지 그래도 한 그릇씩 비워준다.
내가 막상 먹어보니 예전에 식당에서 먹었던 쌀알의 톡톡 씹히는 식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익혀서인지 그냥 큰 밥알 몇 개를 먹는 느낌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다음에는 잊지 말자.
식당에서 먹는 게 맛있다고 내가 만든 게 맛있지는 않다. 그렇게 맛있으면 요리사를 해야지.
자신감이 충만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인간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요리사도 아닌데 자신이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과신한다.
조금 덜 익혀도 좋다. 다음번에 또 익혀야 하니까. 지금이 끝이 아니다. 늘 다음을 떠올려라.
부디 다음에는 맛있는 파스타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