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활용
눈앞의 공간은 비어 보이지만 그 속에 무수히 많은 공기가 숨어있다. 산소, 질소 다양한 원소들이 있지만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주라는 넓고 황량해 보이는 공간에도 암흑물질들이 숨어있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공백을 싫어한다. 비어있는 곳을 어떻게든 균질하게 채우고 싶어 한다.
내 삶의 공간에도 공백이 잠시 생기는 순간이 있다. 바로 지루함을 느낄 때다. 그 공백을 금으로 채울 것이냐 쓰레기로 채울 것이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한 번의 쓰레기로는 차이가 없지만 수십 번, 수백 번의 쓰레기 투기는 인생의 여백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인생을 금맥으로 만들지 아니면 쓰레기장으로 만들지는 공백의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제의 오후, 창가에 홀로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이 생각에 잠겼다. 마치 저 투명한 하늘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 삶을 채우고 있는 걸까? 할 일은 많았지만,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내 안에는 이름 모를 공허함만이 서서히 번져갔다. 지루함이라는 공백이 내 존재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하는 질문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우리의 삶은 연속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언제나 공백이 존재한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에서도, 잠시 멈추어 서는 순간, 우리는 그 공백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공백의 순간들은 마치 백지와도 같아서, 우리가 무엇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된다.
나는 종종 그 공백의 순간들이 두려웠다. 마치 어두운 방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그 텅 빈 시간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그 공간을 채우곤 했다. 무의미한 스마트폰 스크롤, 끝없는 동영상 재생.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지루함이라는 공허와 마주하기보다는, 순간적인 자극으로 그 공백을 메우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이런 방식으로 채워진 공백은 결국 내 삶에 쓰레기만을 쌓아간다는 것을. 한두 번의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는 별것 아닌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내 인생의 풍경은 서서히 쓰레기로 뒤덮인 황무지가 되어간다.
반면, 같은 공백의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울 때는 어떨까? 오래 미루어둔 책 한 권을 펼치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보거나, 혹은 그저 창밖의 하늘을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 이런 순간들은 마치 광부가 땅속 깊은 곳에서 금을 발견하는 것과도 같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똑같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는 천양지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문득 귓가에 맴돈다. 지난 과거의 어느 날, 텅 빈 찻잔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빈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릇 자체의 깨끗함이 중요하단다."
그때는 그저 스쳐 지나간 말씀이었지만, 이제야 그 깊은 의미가 내 마음에 스며든다. 어머니는 내게 공백 자체의 가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애쓰기보다, 때로는 그 비움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마치 오래된 도자기의 빈 공간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품고 있듯, 우리 삶의 여백도 그 자체로 충만할 수 있다고.
어제저녁, 나는 잠시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전자기기를 꺼두고, 그저 고요히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 시간을 알차게 채워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천천히 그 불안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비어있음의 고요함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마음속 잡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불필요한 걱정과 집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맑은 물이 담긴 그릇처럼, 내 내면이 점차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말씀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채우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존재의 본질에 관한 가르침이었음을.
문득 우주는 공백을 싫어한다는 '공백'에 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 공백 자체가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산소와 질소로 가득 찬 빈 공간처럼, 우리의 고요한 순간들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 암흑물질이 우주를 지탱하듯, 우리 삶의 여백도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가치를 '무엇을 가졌는가'로 판단하려고 한다.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는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러나 채움 이전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낼 그릇인 나 자신은 어떤 상태인가? 내 마음의 그릇은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 이것이 어머니가 전하고자 했던 지혜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봄날의 정원에 핀 꽃들 사이의 여백이 없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음악 속 쉼표가 없다면, 그 선율은 얼마나 숨 막히게 느껴질까? 마찬가지로, 삶 속의 공백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 숨을 고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이제 나는 그 공백의 순간들이 두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그 순간들이 내게 주어진 선물임을 안다. 그것은 내가 무엇에 진정한 가치를 두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조용히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채움을 위한 채움이 아닌, 그릇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들임을 안다.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작은 여백들을 금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게으름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저 그 공백 자체의 맑음을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우주가 끊임없이 공백을 채우려 하듯이, 나 역시 내 삶의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채움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비움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