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엘서 바라본 행복의 단상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차가운 유리벽 아래로 서울의 전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시그니엘 42층 카페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을 보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다. 석양이 서서히 물드는 유리창에 내 모습이 흐릿하게 비친다. 그것은 마치 이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 묻힌 나의 존재감 같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로 42층 카페에 올라오는 그 짧은 시간에 함께한 사람들의 대화가 우연히 들렸다. 중년의 아주 머니 두 분의 이야기였다.. "... 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러네. 암이라는데..."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부와 건강 사이의 역설을 보았다. 높은 하늘 위에 자리한 집에 살면서도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같은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잠시 42층 카페에 앉아 유리창 너머의 서울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상에 지어진 집들이 모두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바닷속에 떠 있는 느낌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창가에 앉아 있다가 약속되어 있던 고객을 만났다.

"여기 전망이 참 좋죠?"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네, 정말 아름다워요. 매일 이런 풍경을 보시나요?"

"그렇죠. 하지만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에요. 오히려 날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거든요."


그는 시그니엘의 입주민이었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로, 가상자산 투자로도 성공해 많은 부를 이룬 사람이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어제는 10억이 증발했어요. 오늘은 다시 20억이 생겼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여유롭게 덧붙였다.

"장기 투자자에게는 일상의 변동일뿐이죠. 처음에는 저도 밤잠을 설쳤어요. 10만 원이 왔다 갔다 해도 가슴이 철렁했으니까요."


커피 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마치 도시의 안개처럼 그의 얼굴을 살짝 가렸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 속에서 깊은 평온함을 발견했다. 그것은 돈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비롯된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돈 자체가 행복을 주는 건 아니에요. 돈이 주는 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자유... 이런 것들이 진짜 부의 혜택이에요. 제가 아픈 어머니를 위해 최고의 의료진을 모실 수 있는 것도 물론 큰 축복이지만요."


그의 말에서 삶의 지혜가 묻어났다.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는 오히려 가장 낮은 곳의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갑자기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그 대화가 떠올랐다. 아무리 높은 곳에 살아도,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니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요. 암 진단을 받은 친구들도 몇몇 생겼고요."

그가 창밖을 응시하며 말했다.

"돈이 많다고 건강을 살 수는 없어요. 좋은 치료를 받을 수는 있지만, 질병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죠. 제가 느낀 가장 큰 행복은 사실 소소한 것들에 있었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죠."


커피를 마시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대신, 부의 한계와 진정한 행복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많은 것들이 제한되는 것도 사실이죠."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이죠.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은 필요해요. 그러나 그 '최소한'이 어디까지인지는 각자 다르게 정의하는 것 같아요. 저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에야 깨달았어요.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함을 느끼는 것'에 있다는 걸요. 하지만 자신이 '충분함'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면 자꾸만 함정에 빠져요."


시간이 흘러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을 향해 갔다. 그와 헤어지며 나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진정한 부는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마음의 평화에 있다는 것을.


시그니엘의 화려한 불빛과 멀어질수록,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행복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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