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Sep 18. 2023

길어야 6개월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_김범석

  (제 이야기는 아니고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에 제 생각을 섞어서 적어 봅니다.)


  병실에서 환자를 마주합니다. 의사라는 입장에서 가급적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상세히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복도 끝까지 기다리는 다른 환자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죠.

  "길어야 6개월 남았습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 내년에 딸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데, 사업체 정리를 하려면 6개월로는 어림도 없는데 환자들에게는 다양한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암이란 놈이 ‘기다려 드릴게’라며 여유를 주는 법도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항암치료를 마치고 삶을 되돌아보는데 6개월 정도 걸린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암치료를 마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1달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삶에 미련이 많은 것일까요? 아니면 불필요한 진료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 김범석은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로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그 암을 진단하고 처방해 주는 분이시죠. 내가 과연 저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해 준 책입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없다.

  항암치료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구토를 하고 머리가 빠지고 정말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그렇기에 피하고 싶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항암치료를 권합니다. 다시 재발하거나 상황이 나빠지면 어떻게 될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은 크게 아프지 않기에 항암치료를 피하게 되죠. 그러다 암이 많이 전이된 후에야 항암치료를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항암치료의 시기도 어느 정도 체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정을 모른 채 환자들은 의사가 환자를 죽음으로 내몬다고 소리를 칩니다. 과거에 기회를 주었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살 날이 남았다면 무엇을 더 할 것인가요?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삶에 더 애착을 가집니다. 그동안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배우자와 바다에 가서 해산물 요리 먹기,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자식들에게 선물하기, 손주들에게 편지 쓰기, 고향 친구들에게 밥 사주기, 과거에 싸웠던 친구와 화해하기, 하루에 한 번 웃을 일 만들기, 핸드폰 사진 매일 찍기, 일주일에 세 번 산책하기, 자식들에게 하루 한 통 문자 보내기, 배우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생각해 보면 아주 소소한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소소한 행복을 잊은 채 삶의 관성대로 살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랬듯 오늘을 살고, 오늘도 그랬듯 내일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막상 죽음을 앞두고서야 잘못 살아왔음을 깨닫지요. 삶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한탄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인생 아닐까요? 과연 우리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보람된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요?


극단적 장기 생존자

  암환자임에도 의사의 예상과 달리 매우 오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긍정성이라고 합니다. 특히나 결과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과정과 태도에 대한 긍정이고 하네요. 매사의 결과가 늘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만 기대하다 실망이 커져서 도리어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과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 이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암을 겪더라도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무위가 유위보다 상위다.

  의사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해야 의료수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처방이든 진료든 검사든 어떤 행위가 있어야 그에 따른 대가를 받을 수 있지요. 때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더 환자에게 이로울 수 있습니다. 암이라는 세포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환자의 몸을 더 우선시하고 체력을 더 키워서 버티는 전략을 쓸 때 삶의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려하게 처방을 해서 환자의 생을 늘리는 것은 의사도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을 받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략으로 삶의 기간을 늘리는 것은 의사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증상을 완화시키며 시간을 끄는 전략, 빛나지도 선택하기도 쉽지 않지만 때로는 그런 무위가 상위의 전략임을 사람들은 잊습니다.


최선은 정말 최선인가?

  점점 더 사람을 살려가는 기술은 늘어납니다. 하지만 과연 그 기술로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느냐가 맞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그저 생명만을 유지한 채 사는 삶, 과연 환자는 그런 삶을 원했을까요? 의사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호흡기를 끊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2016년부터는 그나마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연명치료를 중단조차 할 수 없었죠. 상황이 좋지 않고 가족들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를 바라고 의료적 소견으로도 더 이상의 회복이 불가능할 때 치료를 중단하며 느끼는 의사의 부담감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삶을 마감한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약간 무거운 책은 멀리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소설도 잘 읽지 않죠. 삶에 대해 너무 진지한 것도 너무 가벼운 것도 제게는 와닿지 않나 봅니다. 아내가 저에게 읽기를 권해서 리뷰를 써보게 됩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술 많이 먹다가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경고의 멘트를 보내는 것일까요?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감해야 할 텐데 저는 너무 막살고 있지 않은지 다시 되돌아봐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관을 설계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