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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an 28. 2024

#28 세금보다 무서운 형

상속 유류분

[과거의 직장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상속세 조사를 하다 보면 보통은 첫째 자녀가 상속에 대해 더 관심도 많고 책임도 많이 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예전에는 법적으로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상속 재산을 주지 않고 장자에게 특별히 더 우대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려주는 재산도 많지 않았기에 모두에게 균등하게 물려주면 각자에게 남는 재산이 많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장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지만 몇십 년 전의 상속은 그렇게 정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자녀가 동등하게 1:1로 배분이 되고 다만 배우자에게 50%가 더 인정되어 1.5의 비율로 상속재산을 배분하게 되었습니다.


  지방국세청에서 상속세 조사를 할 때였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상속재산이 100억 원이 넘는 고액 재산가였습니다. 이미 자녀들에게 수십억 원의 재산을 돌아가시기 전에 물려준 상태였죠. 그렇게 자녀에게 물려주고 남은 재산이 100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자녀 간의 재산 편차가 유난히 컸습니다.

  큰 아들은 몇 십억 원의 재산을 분배받는데 비해 막내아들은 상속 재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문득 이유가 궁금했지요. 상속 합의서에는 분명 막내 동생은 재산을 분배받지 않겠다는 도장이 찍혀있었습니다. 수십 억원이 되는 재산을 포기한다. 저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재산분배는 상속인들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조사팀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상속인들에게 잘못 이야기했다가 괜한 송사에 휘말리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늘 중립적으로 판단을 하고 어느 한쪽의 견해만 들어서 결정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몇 달간의 조사가 끝나고 누락된 상속재산과 손자에게 물려준 재산에 대한 세금 통지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세금 통지서에 나온 숫자가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상속 재산과 함께 자녀들에게 이만큼 재산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막내 동생은 기가 막혀서 제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큰 형이 막내 동생을 불렀다고 합니다. 큰 형이 아버지 재산은 다 분배되고 막내 동생 몫은 이거밖에 없다며 오백만 원이 든 현금 봉투를 손에 쥐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막내는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에 도장을 찍었지요.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냐고 제게 묻더군요.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 유류분 제도를 설명드렸습니다. 유류분은 돌아가신 분이 아무리 임의로 누군가에게 주더라도 법으로 정해진 지분의 절반만큼은 상속인이 찾아갈 수 있는 제도입니다. 배우자는 없었고 막내 동생을 포함해 모두 5남매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각각 20%의 지분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고 유류분에 해당하는 금액은 법정 지분의 1/2인 10%였습니다.

  막내 동생은 연신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셔서 상담을 받고 소송을 거쳐 1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돌려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상속세 조사를 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건 조사팀이 아니라 형제자매라고 이야기합니다. 상속 분쟁이 벌어진 집안에서는 조사팀이 놓친 상속재산을 자녀들이 싸움을 벌이며 찾아내죠. 그래서 조사팀이 찾지 못한 상속재산까지도 모두 계산하여 상속세를 낸다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좋지만 좋은 우애를 물려주는 것이 절세보다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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