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전문가의 고백
책상 위 조사가 마무리된 서류들이 쌓여있다. 또 하나의 세무조사 사건이 끝나 서류를 정리하다가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생각에 잠긴다.
눈이 아플 때는 안과를 가고,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간다. 의료에서는 이토록 당연한 일상의 논리가 내 전문 분야에서만큼은 왜 통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주식 관련 소송을 이혼전문 변호사에게 맡기지는 않으면서, 유독 세무사만큼은 그런 구분 없이 찾아온다.
나는 세무조사를 전문으로 한다. 굳이 내 전공을 규정한다면 그렇다. 물론 경정청구 업무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상속세 신고를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해외 투자 세무 검토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업무는 나에게 익숙한 물처럼 자연스럽다. 국세청 담당자들과의 문답에서 쟁점을 읽어내는 일, 복잡하게 얽힌 거래 관계 속에서 핵심 논리를 찾아내는 일, 그 과정을 조율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불이익을 다른 사람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무사님’이라는 하나의 호칭 아래 모든 것을 기대한다. 마치 요술램프 지니의 만능 해결사처럼, 모든 세무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법인세든 부가세든 상속세든, 장부기장이든 경정청구든, 모든 것이 그렇게 하나의 영역으로 뭉뚱그려진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때로 안타까움이 든다. 사실 세무사들도 영역을 특정해서 홍보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서는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전문성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언젠가는 세무 시장에도 명확한 구분이 생기지 않을까. “세무조사 전문 김세무사”, “상속세 전문 이세무사”, “경정청구 전문 박세무사”… 이런 식으로 각자의 전문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날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 역시 전공을 명확히 밝혀, “저는 세무조사 전문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으로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한 올인원 기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세무라는 간판 뒤에 숨어있는 각자의 전문성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날까지, 조용히 내 전문 분야를 연마하는 수밖에 없다.
내일은 또 어떤 세무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내 전문성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