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라는 직책
"대표님, 저희가 맞습니다. 고객이 잘못 이해한 겁니다."
회의실 건너편, 부서장과 팀장의 얼굴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서 있었다.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진 고객의 항의 메일, 그리고 어젯밤 외부 전문가 세 명에게 조심스럽게 구한 의견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귀사의 실수입니다."
그 말을 읽는 순간, 손끝이 묵직해졌다.
대표라는 자리는 결국 이런 순간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고객에게 사유서를 보내겠습니다.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면 고객도 이해할 겁니다."
부서장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서장은 1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들의 자신감이, 그들의 확신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독선처럼 느껴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외부 전문가 세 명 모두 우리가 틀렸다고 할까요?"
"그들도 자세한 상황을 정확 모르는 겁니다."
부서장의 답변은 즉각적이었다.
책임.
이 두 글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다. 대표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다. 동시에 모든 것의 최종 책임자다. 부하직원이 실수해도, 그것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다. 업무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결국 나의 책임이다. 이건 대표 자리에 오를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뻔히 보이는 실수를, 당사자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을 때, 대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객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머리를 숙여야 한다.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입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이 말을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부서장도, 팀장도 아닌, 대표인 내가 해야 한다. 그게 대표의 역할이니까. 그러라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하지만 고객사를 방문하기 전, 나는 다시 회의실로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주세요"
두 시간 동안 그들의 논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톱니바퀴가 어긋나 있었다. 기본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 쌓아 올린 논리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완벽했다.
"이건 틀렸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고객의 해석이 맞습니다."
"대표님이 현장을 잘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순간, 숨이 멎었다. 내가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인데,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이 회사의 대표이자 20년을 넘게 일했는데, 10년 경력 직원으로부터 '당신은 몰라서 그래'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들이 진짜로 맞는 걸까? 내가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들이 너무 오래 자기 방식에 갇혀서, 객관적 시각을 잃은 걸까?
결국 나는 혼자 결정해야 했다. 직접 찾아가 사과할 것인가, 직원들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직원들을 믿고 사유서를 보냈다가 상황이 더 악화되면? 그 책임도 결국 내 몫이다. 직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사과하면? 그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나는 '현장을 모르는 대표'가 된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고객사 회의실로 향했다. 고객이 들어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였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고객의 시선 앞에서 나는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대표니까. 책임지는 사람이니까.
사무실로 돌아와 부서장을 불렀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검토 프로세스를 바꿉시다."
그나마 잘못을 인정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표의 고독은 이런 것이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고, 직접 발로 뛰어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럼에도 모두를 이끌고 가야 한다. 오늘도 나는 그 무게를 진다. 그게 내가 선택한 자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