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4 나는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을까?

Twins' mailbox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예전에 대만 타이중에 갔을 때였다.
거리를 걷다 특이한 우편함을 하나 보았다.


메일함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하나는
타이중 시내와 기타 지역으로 가는
녹색 우편함.


다른 하나는
해외로 보내거나
긴급 우편을 처리하는
빨간 우편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두 메일함은
우편함이라기보다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마치 잠이 덜 깬
쌍둥이의 얼굴 같았다.

색연필로 색을 입히고 나니
그 느낌은 더 분명해졌다.


녹색 우편함은
잠이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보였고,


빨간 우편함은
술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였다.


그때 그림을 그리던 내가
잠이 잘 안 깨고,
술도 잘 안 깨서
그렇게 보였던 걸까?


그림을 그리다 말고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세금과 논리의 세계에서는
결과가 확인되는 소통을 원한다.


보냈는지,
도착했는지,
확실한 답이 있는지.

애매모호함이란 없다.


하지만 이 메일함은
다른 세계의 문처럼 보였다.


도착하지 않아도
의미가 남는 질문을
허락하는 문.


이 그림 앞에서

나는 묻게 된다.
질문은 반드시
정답을 가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Twins' Mailbox

Who was I really speaking to?


The mailbox is closed,

yet it holds one of the oldest doors to the world.


A door that sends questions in the form of letters.


A letter does not demand an immediate reply.
It may arrive, or it may not.


In the world of logic,
communication is meaningful only when the result is confirmed.


This door allows something different—
questions that remain meaningful even without arrival.


Standing in front of this mailbox,
I begin to wonder:


Do questions need answers to matter,
or is the act of asking already enough?

매거진의 이전글no.3 어느 쪽이 다른 세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