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를 읽고, AI 와의 비교를 내려놓다.
클루지를 덮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이 조용하지 않았다. 책이 새로움을 준다기보다, 내가 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판단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편향과 습관, 즉 인지적 결함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결함이 ‘나에게는 예외일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클루지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특별히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해서 더 불편하다. 우리는 정보를 모으고, 비교하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과정의 오류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선택을 해놓고 나서야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그 이유가 마치 처음부터 내 판단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기억한다. 틀렸다는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이미 세워둔 결론을 지키기 위해 사고가 움직인다. 생각은 진실을 찾는 도구라기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지키는 변호사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참고문헌에 들어 있는 논문 하나가 특이해 보였다. “부자라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다룬 논문이었다. 주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돈이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문이 말하는 ‘초점 착각(focusing illusion)’은 결국 우리가 어떤 질문을 받는 순간, 삶 전체가 아니라 특정 요소 하나에 과하게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였다. 소득이 늘어나면 삶의 만족도는 올라갈지 모르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질이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라는 환상 속에 젖어 있다. ‘돈만 있으면’이라는 문장은 너무 강력해서, 다른 수많은 요소를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생각해 보면 돈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늘 하나의 기준에 삶을 끼워 맞춘다. 학벌, 직업, 성과, 명함, 팔로워 수, 연봉, 집. 세상이 만들어놓은 ‘타인의 기준’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내 삶은 갑자기 평가의 장이 되고, 나는 심판대 위에 서게 된다. 클루지는 그 과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우리가 얼마나 엉성한 시스템 위에서 “나는 괜찮다”를 증명하려 하는지 보여준다.
특히 책 속에서 “기계와 경쟁했다”는 표현을 마주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AI를 떠올렸다. 예전에는 기계가 육체적 노동이나 반복 업무를 대신했다면, 이제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생각'까지 기계의 몫이 되었다. 글을 쓰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그들의 정교함 앞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경계선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동차보다 느리게 뛴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달리기에서 자동차를 이길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그건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차이다. 자동차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내가 뛰는 속도와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동차가 잘하는 일이 있고, 내가 잘하는 일이 있다. 문제는 내가 못하는 것에 자꾸 집중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비교의 대상이 잘못 설정되는 순간, 삶은 매번 패배로 끝난다.
AI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내가 어떤 영역에서 AI보다 느리고, 부족하고, 덜 정확하다고 해서 그걸 ‘나의 실패’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고, 그 간극은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질문이 바뀐다. “어떻게 따라잡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이용할까?”로. 이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불행이 ‘불가능한 경쟁’을 붙잡고 있을 때 생기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이기려는 달리기 선수가 없듯이, AI를 이기려는 방식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건 어쩌면 방향이 틀린 문제일지도 모른다.
클루지는 결국 인간이 가진 인지적 결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결함을 부끄러워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결함을 전제로 삶을 설계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실수한다. 나는 편향적이다. 나는 종종 내 욕망을 합리화한다. 그리고 나는 비교에 약하다. 그렇다면 답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를 인정한 상태에서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흔들리는 지점을 알고, 내가 쉽게 속는 구간을 알고, 내 판단이 왜곡되는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짜 실용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행복도 결국 인지의 문제일 수 있다. 돈이 많아져도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 이유는, 행복이 외부 조건 하나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느냐, 비교가 누구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느냐, 내가 어떤 결핍을 확대해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삶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무엇을 더 가질까”보다 “무엇에 초점을 맞출까”를 더 자주 고민하게 된다.
클루지를 읽고 나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생각이 더 똑똑해진 게 아니라 생각을 더 조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래 이렇게 허술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완벽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줄고, 대신 더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기계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둘을 어떻게 섞어 더 나은 삶으로 가져갈지.
나는 자동차보다 느리게 뛴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는 AI보다 느리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그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고, 이용하는 쪽으로 그게 경쟁의 시대를 통과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