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구석기시대 원시인'이 살고 있다

주식 투자부터 다이어트 실패까지, 내 안의 멍청한 설계자를 길들이는 법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과 마주할 때가 있다. 분명 어제저녁엔 체중계가 알려준 무게에 충격을 받고 "오늘부터 진짜 다이어트 시작이다!"라고 굳세게 선언했다. 하지만 퇴근길, 코끝을 찌르는 치킨 냄새와 화려한 편의점 디저트 매대 앞에서 내 결심은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진짜 하자", "오늘은 고생했으니까 치팅데이야"라며 스스로를 달래고는, 기름진 식사에 달콤한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챙겨 먹는 나를 발견한다. 배가 부르고 나서야 밀려오는 자괴감.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박약한 걸까?


게리 마커스의 저서《클루지(Kluge)》는 나의 이런 한심한 반복이 사실 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진화 과정에서 덧대어진 '엉터리 설계물'이기 때문이라고 위로를 건넨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고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한다. 진화는 완벽한 설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당장 생존에 급급해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뇌를 업데이트하다 보니, 현대인의 머릿속에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려는 최첨단 지능과 일단 먹고 보자는 구석기시대의 생존 본능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제안하는 지침들을 나의 뼈아픈 실수들과 결합해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내 몸의 신호를 이성의 소리로 착각하지 않기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은 신체적 상태와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다. (지침 7, 12번) 우리는 피곤하거나 배가 고플 때 내리는 짜증 섞인 결정을 '내 진심'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다이어트 중 겪는 '치팅데이의 유혹'이 대표적이다. 업무에 지쳐 뇌의 에너지가 고갈되면, 우리 뇌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보상인 '설탕과 지방'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때 내뱉는 "오늘만 먹자"는 말은 내 이성이 내린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굶주린 원시인이 내 지갑을 털기 위해 보낸 가짜 신호일뿐이다.


이제 나는 배고플 때 큰 결정을 하지 않고, 피곤할 때 "오늘만"이라는 단어를 경계한다. 내 기분과 몸 상태에 '이름표'를 붙여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뇌가 피곤해서 보상을 요구하는 클루지 현상이야"라고 말이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충동적인 식욕의 불길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다.


두 번째, '주식의 착각'과 '본전 생각'이라는 함정 피하기


두 번째는 선택의 프레임을 넓히고 객관화하는 연습이다. (지침 1, 2, 8, 11번) 나를 괴롭혔던 또 다른 클루지는 바로 주식 투자였다. 내가 산 주식은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하락장에서도 나에게 유리한 뉴스만 찾아다녔다. 내가 이미 돈을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주식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생각이 맞다는 증거만 수집하는 '확증 편향'과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매몰 비용 오류'가 결합한 최악의 사례다.


책은 말한다. 이미 지불한 비용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만약 내가 오늘 이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 가격에 새로 살 것인가?"라고 냉정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맛없는 식당에서 돈이 아까워 음식을 다 먹고 배탈이 나는 것보다, 과감히 숟가락을 놓는 것이 진짜 이익이다. 과거의 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의 많은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세 번째, 의지력을 믿지 말고 환경과 시스템을 믿기


마지막으로 가장 실용적인 제안은 의지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침 5, 6, 10, 13번) 나는 매주 일요일 밤이면 원대한 공부 계획표를 세운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세법을 외우고 영어 신문을 읽겠다는 계획을 거창하게 세운다. 하지만 실제 월요일 아침이 되면 '5분만 더'를 외치며 알람을 끄기 일쑤다. 내 뇌는 장기적인 성공보다 당장의 달콤한 잠을 선택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조건부 계획'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막연한 다짐 대신,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씻기 전에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한 페이지 펼친다"는 식의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뇌가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가정하며 공부 모임에 가입하는 것(지침 9번)이 훨씬 효과적이다. 완벽한 계획표를 짜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뗄 수밖에 없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클루지를 이기는 비결이다.


결론: 클루지를 인정할 때 시작되는 진짜 변화


게리 마커스의 13가지 제안을 정리하며 느낀 점은, 결코 내가 '완벽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내 뇌 속에는 여전히 원시인이 살고 있고, 그는 수시로 나를 유혹해 치킨을 시키게 하거나 주식을 추격 매수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를 자책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아, 또 클루지가 작동했네"라며 가볍게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언제 실수하기 쉬운지, 내 판단이 언제 흐려지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 길목에 미리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다.


이제 나는 마트에 가기 전 반드시 가벼운 간식을 챙겨 먹고, 주식 창을 열기 전 스스로 질문한다. "지금 내 뇌는 맑은 상태인가? 아니면 클루지에 휘둘리고 있는가?" 완벽한 지능이 아니라 현명한 습관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낡은 설계자가 아니라, 그 설계를 이해하고 보완해 나가는 '지금의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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