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
줄리아 켈러의 『퀴팅(Quiting)』을 읽고 나서, 나는 “그만두는 것”을 다시 정의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그만둔다’는 말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 왔다. 어떤 선택의 끝, 어떤 관계의 결론, 어떤 일의 패배. 마치 그것이 삶의 한 장을 찢어내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버티는 사람은 강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약하다는 낡은 프레임을 내 안에서도 은근히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이 있다.
후회는 그만두었을 때가 아니라,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놓쳤을 때 찾아온다.
이 한 문장을 보며 내 경험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동안 “그만두고 나서 후회할까 봐”를 더 크게 걱정해 왔지, “그만둬야 할 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후회는 늘 선택의 결과에서 온다고 믿었는데, 켈러는 오히려 선택을 미룬 시간에서 후회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한 번, 정말 지쳐서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조사국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체력이 아니라, 뇌가 먼저 지쳤다. 머리가 뿌옇고, 사람 말이 잘 안 들리고, 작은 자극에도 짜증이 치솟았다. 그때 내 결론은 단순했다. “그만둬야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결론이 아니라 피로가 만들어낸 즉흥적인 답이었다. 뇌가 지쳐있을 때는,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뇌는 안전을 원한다. 지금의 스트레스를 끊어내고 싶어서, 가장 쉬운 문장으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만두면 해결될 거야.”
그런데 켈러가 말하듯, 그만둔다고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문제는 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의 방식일 수도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너무 이분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직장을 그냥 다닌다, 퇴사한다.
버틴다, 도망간다.
승리자, 패배자.
마치 선택지가 딱 두 개뿐인 것처럼. 하지만 켈러는 그 이분법에서 빠져나오라고 말한다. 그만두는 것과 버티는 것 사이에,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고.
나 역시 그 중간 지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바꿔야 했던 순간이 더 많았다. 초과근무를 줄여봤고, 일의 구조를 조정해 봤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해 봤다. 어떤 때는 내가 속한 환경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환경 속에서 내가 “모든 걸 다 책임지려는 습관”이 문제였을 때도 있었다.
결국 해결은 ‘퇴사’라는 단어가 아니라, 현재 삶을 유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서 시작됐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직장”을 원인으로 말한다.
하지만 정말 이유가 직장 때문일까?
나는 그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봤다.
내가 힘든 건 일 자체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 때문인가?
분위기인가, 거래처인가, 책임감인가, 비교심리인가?
그 원인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그만두자”라고 결론을 내리면, 사실 그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통째로 덮어버리는 셈이 된다. 켈러는 ‘그만두는 행위’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만두는 방식이 진짜 선택이 되려면, 원인을 해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이 현실적이다. 퇴사는 종종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모르면, 같은 고통이 다른 이름으로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만둔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뻔하다.
남의 시선 때문이다.
그만둔다고 하면 패배자, 실패자로 비친다.
나는 그 프레임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왜 못 버텼어?”라는 질문은 늘 상대의 걱정처럼 포장되지만, 사실 그 안에는 평가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평가는 묘하게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하지만 켈러의 문장들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자신에게 무엇이 맞는지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남들은 결과만 본다. 내가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 어떤 압박 속에서 하루를 버텼는지,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맞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만두지 마.”
“버텨야지.”
“그 정도는 다 참아.”
그런 말들은 대부분 상대의 인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조언이다.
그러니까 결국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남들이 정한 승패가 아니라 내가 살아낼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만둔다’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부르게 됐다.
그만두는 건 패배가 아니라 조정일 수 있다.
충동이 아니라 점검일 수 있다.
도망이 아니라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완전히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반일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부서를 바꿀 수도 있고, 다른 회사에서 동일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내가 살아낼 수 있는 대안을 더 많이 떠올리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버틴다.
나는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먼저 뇌가 지쳐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진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내 삶에서 조정 가능한 것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말 마지막에 묻는다.
“이건 그만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방식만 바꿔야 하는 걸까?”
후회는 그만두었을 때가 아니라,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놓쳤을 때 찾아온다.
나는 그 말이 결국, 나에게 책임을 돌리라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 권한을 돌려주라는 말처럼 들렸다.
남들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살리는 선택을 하라고.
그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위로였고,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