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다가
책을 읽다가 한 문장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
너무 단순해서,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었다.
평생 언어와 문화를 탐구한 사람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도달한 결론이라니.
아무리 공감하려 애써도, 아무리 이해한다고 말해도, 타인의 고통은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그 문장을 읽고 며칠 뒤였다. 이른 아침, 거리를 걷다 시위 현장을 스쳐 지나갔다. 스피커에서는 어떤 구호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청년을 늘려야 해!”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쳤다. 요즘 워낙 익숙한 말들이니까. 청년 정책, 청년 일자리, 청년의 미래 같은 이야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몇 걸음 지나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서서 피켓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년 연장’.
청년이 아니라 정년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는 분명히 ‘정년’을 보면서도 ‘청년’이라고 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들이 한 말이 아니라, 내가 익숙한 단어로.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구나.
의도한 것도 아니고,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했을 뿐이다.
내 관심사 안에서만 세상을 듣고, 그 바깥의 아픔은 자연스럽게 지워버렸다.
이어령 선생님이 말한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는 말이 그 순간 갑자기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시간을, 아직 도달하지 않은 나이를, 어떻게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자꾸만 그 문장을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타인,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의 음주 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럼… 고칠까?”
그러자 아내가 되물었다.
“어디를요?”
“어떻게요?”
“얼마나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눈빛에는 기대보다 어이없음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고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바꿀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더 깊이 교감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말을 해도
어디선가 어긋나 있는 느낌.
오래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아내는 나를 잘 이해해 주었다.
아픈 사람으로서의 나는 받아들여졌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내가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당신, 표정이 변했어. 예전엔 웃음이 많았잖아. 근데 요즘은… 그 얼굴이 하나도 없어.”
잠시 말을 고르던 아내는 이렇게 덧붙였다.
“욕심이 당신 웃음을 가져간 것 같아.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어떨까?”
그 말이 위로였는지, 경고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아내의 표정을 보고도 나는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아내의 아픔조차, 나는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어령 선생님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어도,
같은 시간을 살아도,
끝내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보다 말을 아낀다.
고치겠다는 말 대신,
먼저 묻고, 조금 더 듣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내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내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만 듣지는 않으려고.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이고,
어쩌면 가장 늦게 배운,
가장 어려운 배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