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네카가 선택한 길
측정할 수 없다면 결국 손에 쥘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구분 기준이 없다면 어디까지가 달성이고 어디까지가 실패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닿을 수 없는 구름을 만지려는 것과 같다. 구름은 분명 눈앞에 떠 있지만, 우리가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주 미세한 물방울뿐이다. 안개 역시 그러하다. 안개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손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행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분명 존재하지만, 정확히 쥘 수 없고, 수치로 증명할 수도 없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동시에 로마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렸던 세네카.
그가 말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는 분명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명예도, 권력도, 부 어느 하나도 동 시대에 누구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황제로부터 자결을 명받는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소크라테스처럼, 그는 묵묵히 그 명을 받아들이고 생을 마감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도 있고 충분히 망명을 할 수도 있는 재력과 권력을 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는 평생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필연성을 사유해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국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이 단순한 진리를 그는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평생의 비겁자가 되기보다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태도만은 끝까지 지키겠다는 선택. 그것이 세네카가 택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먼 미래에 닥칠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크게 불행하지 않다. 굶주리지 않고 있고, 가족은 곁에 있으며, 내게 할 일이 있으며, 몸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겉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언젠가 떠나야 할 가족이 잘 떠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올해도 돈을 잘 벌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 점점 침침해지는 눈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몸의 삐걱거림. 병원을 자주 찾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슬픈 예감. 그런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행복은 늘 ‘지금’에 있지만, 불안은 항상 ‘다음’을 향해 있다.
문득 내가 존경하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떠오른다.
그는 스스로 정한 13가지 덕목을 평생 점검하며 살았고, 나이 오십에 이르러 “나는 그 어느 하나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행복에 가장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무엇을 더 가져서 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무리하지 않고, 과도하게 욕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혹사시키지 않는 삶. 세네카가 말한 행복 역시 결국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더 누리려 하지 않고, 더 쥐려 하지 않으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다수가 말하는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일 수는 없다. 그럴 가능성은 높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향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세네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행복은 측정할 수 없고, 남의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손에 쥘 수 없는 안개와 같은 것이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것.
더 많이 가지지 않고, 덜 욕망하고, 덜 두려워하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에 꽤 가까이 와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