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서 배운 인생의 정석
밤 10시부터 12시 사이까지, 서울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늘 쉽지 않다. 부천으로 넘어온 서울 택시는 다시 서울로 돌아갈 때 빈차로 가야 한다는 '손해의 계산' 때문에, 예전에는 원래 요금에 웃돈을 얹어주어야 겨우 차를 잡을 수 있었다. 목적지를 말할 때마다 거절당하지 않을까 조바심 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카카오택시 덕분에 실랑이하는 수고는 덜었다. 하지만, 여전히 '돈 안 되는 구간'을 흔쾌히 달려와 주는 기사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보아도 분명 손해일 것 같은 거리인데도 묵묵히 달려오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며 나는 많은 것을 느낀다. 단순히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업계의 '최고'를 달리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직업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는 비싼 강의료를 지불하고 들어야 할 만큼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 특별한 수업 중 하나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어느 밤 11시, 신촌에서 시작되었다. 모임이 끝난 후 몸살 기운까지 겹쳐 대중교통을 탈 엄두가 나지 않던 날이었다. 콜택시 앱에는 근처 7대, 16대까지 요청 메시지가 늘어갔지만 응답하는 기사는 없었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지쳐갈 때쯤, 한 기사님이 응답을 주셨다.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친절한 전화 한 통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먼저 녹아내렸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올라탄 택시 안은 따뜻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목소리에는 기분 좋은 웃음이 묻어났다. 멀리서 오게 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나의 인사에 기사님은 오히려 기다려주어 고맙다며 화답하셨다. 그렇게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받으며 가던 중, 나는 기사님의 비범한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업 부도라는 아픔을 겪고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는 기사님은 현재 본인 회사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가끔은 1등도 차지하는 베테랑이셨다. 남들이 꺼리는 구간까지 마다치 않으면서 어떻게 그런 성적을 낼 수 있는지 비결을 묻자, 그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제게는 요령이 없어요.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언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돈이 되는 먼 거리만 골라 타야 수익이 나는 게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기사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수익의 핵심은 '먼 거리를 가는 것'이 아니라 '빈 차로 다니는 시간을 줄이는 것'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 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간을 연구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다음 손님을 바로 맞이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공부하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일을 시작하며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고, 5년 뒤에나 보자며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정리하며 오직 자신의 길에 집중했다. 매일 아침 운행을 시작하기 전, 1시간 반 동안 헬스장을 찾아 체력을 기르는 루틴도 거르지 않으셨다. 요령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연구하며 정석대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힘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목소리에는 결이 같은 울림이 있다. 나는 오늘도 인생의 가장 큰 수업을 마쳤다.
택시를 내리고 나면 금세 잊혀버릴 이야기들이 아쉬워 나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그들의 삶만큼 다양하고 체험적인 얘기는 어디서도 듣기 어렵겠다 싶었다. 나중에라도 돌아보며 그 사람들의 삶을 복기해보고 싶었다.
이 기록들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때 한 번쯤 참고해 볼 만한 귀한 지침서가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요령보다는 성실함을, 편법보다는 연구를 택한 그 기사님의 뒷모습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통한다는 것을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