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는 거래의 형태보다 본질이 우선입니다.

‘차입금 규모’보다 ‘자금의 본질’이 우선이었던 이유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박 대표님,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희 투자회사 차입금이 워낙 많다 보니, 이거 자칫 세무조사 타깃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김 대표의 물음에 박 대표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김 대표, 잘 생각해야 해. 우리 회사도 얼마 전에 세무조사를 받았거든. 우리도 외국 본사에서 차입금을 수백억 원 넘게 들여왔는데 매출이 없었어. 국세청에서 바로 그 부분을 문제 삼더라고. 김 대표네 회사도 우리처럼 차입금만 많고 매출이 없으니 조심해야 할 거야.”


옆에서 이 대화를 지켜보던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의 조언은 얼핏 경험에 근거한 실질적인 충고처럼 들리지만, 사실 세무조사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계 자회사가 조사를 받은 이유는 단순히 ‘차입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형태가 아닌 ‘경제적 실질’의 문제


박 대표의 회사가 조사를 받은 진짜 이유는 차입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차입금 속에 숨겨진 ‘수익의 성격’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외국계 자회사는 한국 시장에서 외국 모회사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마케팅을 돕거나, 연구개발을 지원하거나, 고객 관리를 대행하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자회사는 모회사의 매출에 기여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수수료나 서비스 매출 형태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비즈니스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박 대표의 회사는 대가를 받는 대신, 그 자금을 ‘차입금’이라는 형태로 끌어왔습니다. 과세당국이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자회사가 모회사의 매출에 기여했음에도 왜 매출로 잡지 않고 빚으로 들여왔는가?”


즉, 그 수백억 원의 차입금 안에는 자회사가 마땅히 인식했어야 할 ‘매출’이 녹아져 있다고 본 것입니다. 자회사가 매출을 인식하면 법인세를 내야 하지만, 차입금으로 처리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자 비용까지 발생시켜 과세 표준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세청은 “차입금 중 일부는 사실상 매출이니, 이 부분을 매출로 환원해 세금을 내라”는 취지로 조사를 진행한 것입니다.


투자회사와 외국계 자회사의 결정적 차이


김 대표가 운영하는 투자회사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투자회사의 업종 특성상 자금을 차입하여 운용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경영 활동입니다. 단순히 차입금이 많고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이 없다는 ‘형태’만 보고 박 대표의 사례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박 대표의 회사는 ‘제공한 용역에 대한 대가(매출)의 은닉’이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김 대표의 회사는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순수 차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무조사 대상 선정은 이처럼 자금이 유입된 원인과 그 과정의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는 것이지, 단순히 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공포에서 벗어나기


세무조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경영자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박 대표처럼 “나도 차입금이 많아 조사받았으니 너도 위험하다”는 식의 단편적인 해석은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할 뿐입니다.


세무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우리 회사가 보유한 차입금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입니다. 이 자금이 본사와의 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기여도의 대가인지, 아니면 순수한 금융 거래인지를 증빙할 수 있다면 차입금 규모가 크다는 사실만으로 위축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차입금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 차입금에 수익으로서의 성격이 섞여 있는가?’입니다.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타인의 사례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고 투명한 경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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