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중재자가 필요한 순간

대학 친구 넷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의정부, 부천, 천안, 그리고 서울.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요. 사는 곳이 다 다르다 보니 모이는 곳 정하는 게 항상 일입니다. 처음엔 의정부 사는 친구가 '일산'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모임은 천안 사는 친구가 밥을 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밥 사는 친구는 모임 장소로 강남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정부 친구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본인이 강남까지 가려면 왕복 6시간인데 너무 멀지 않냐는 것이었죠. 천안 친구는 곧장 "그럴 거면 차라리 천안으로 내려와라"며 강하게 나왔고, 의정부 친구는 "천안엔 너 하나지만 나머지 셋은 멀리 가야 하지 않느냐"며 맞섰습니다.


결국 의정부 친구가 단톡방에 투표를 올렸습니다. 일산, 강남, 천안. 3군데 중 한 군데를 고르라는 투표였지요. 그리고선 본인은 일산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표가 자기 쪽으로 모이길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간 답이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즐거워야 할 모임이 시작도 전에 상처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천안 친구에게 따로 연락을 했습니다.


"너 정말 강남에 가고 싶은 거니?"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약속 날짜가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천안에서 강남까지 보통은 1시간 반이면 가지만 주말에는 버스를 타면 차가 밀려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합니다. 천안 친구 입장에서는 큰맘 먹고 밥까지 대접하는 마당에 그 긴 여정이 내심 부담스러웠던 겁니다. 친구는 그저 본인이 조금이라도 덜 지칠 수 있는 경로를 찾았던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천안에서 일산까지 KTX를 타고 오면 어때? 1시간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친구는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강남보다 훨씬 가까운 길이었죠. 그제야 친구는 흔쾌히 일산행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투표 대신 대화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따져보니 일산은 의정부에서도, 부천에서도, 서울에서도 한 시간, 그리고 천안에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공평한 ‘중간 지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상대에 대해 다 안다고 자만합니다. 의정부 친구는 천안 친구가 그저 제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천안 친구 역시 돈까지 써가며 멀리 가는 자기를 아무도 몰라준다고 서운해했을지 모릅니다.


모임에는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내 사정만큼 타인의 사정도 귀하다는 걸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 모임을 지키는 건 결국 ‘승자’가 아니라 ‘중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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