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부자의 품격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잠시 약속시간을 앞두고 전시회를 거니며 나는 얼마큼의 교양과 격식을 가지고 있는지 되물었다. 수많은 부자들을 만나며 사람마다 다른 격이 느껴진다. 인품과 배려는 쉽사리 길러지지 않는다. 특히 교양과 격식은 지루함을 참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오랜 습관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최근 두 명의 회장을 만났다. 둘 다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극명하게 달랐다.


첫 번째 회장은 자문계약을 맺은 사람이었다. 처음 계약할 때 정한 기간이 있었는데, 실무자에게 연락이 와서는 일방적으로 그 기간을 줄여버렸다. 통상 계약 내용에 착오가 있다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해서 조율하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그는 실무자의 실수를 핑계 삼으며 자신은 뒤로 빠졌다.


더 놀라운 것은 식사나 골프를 함께 할 때였다. 그는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계산을 떠넘기곤 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통장 잔고는 넉넉했을지 몰라도, 그가 가진 인간적 품위는 형편없었다.


반면 두 번째 회장은 달랐다. 그는 나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본인이 얻는 이익이 없음에도 늘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며 내 고객 네트워크도 넓혀주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지는,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어른이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부자들을 만나며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의 액수가 그 사람의 품격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들이 재산을 어떻게 모았고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격이 보인다.


어떤 이는 수백억을 가지고도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면서 세금을 깎으려 온갖 편법을 동원한다. 또 어떤 이는 재산은 적어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세금도 당당하게 낸다.


교양과 격식은 지루함을 참는 데서 시작된다. 미술관에서 작품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 클래식 공연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즉각적인 재미나 이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지루함을 견디는 훈련이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이 된다.


첫 번째 회장은 아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는 데 익숙했을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고, 편의를 사고, 사람의 노동을 샀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는 평생 배우지 못했다.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는 배려, 약속을 지키는 신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태도. 이런 것들은 반복된 습관과 훈련으로만 몸에 배는 것들이다. 한 번의 결심이나 깨달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매일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옳은 쪽을 선택하는 연습이 쌓여야 한다.


두 번째 회장은 작은 만남에도 정성을 다했고, 자신에게 즉각적인 이익이 없는 관계도 소중히 여겼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훈련시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상대의 재력이나 지위를 먼저 보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했다.


흥미로운 것은, 진짜 실력 있는 부자일수록 겸손하다는 점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우연과 행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반면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처럼 착각한다. 출발선이 달랐다는 사실을, 자신이 가진 기회가 특권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래서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


돈은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 좋은 학교에 갈 기회,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 문화를 접할 기회. 하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몫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함께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명품 매장에서 점원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고, 작은 가게에서도 주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 교양과 격식은 그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로 드러난다. 특히 자신보다 약한 사람,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없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미술관을 나서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얼마큼의 교양과 격식을 가지고 있는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노력하는가. 당장의 이익이 없어 보이는 관계도 소중히 여기는가.


두 명의 회장을 떠올리며 나는 결심한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지더라도, 두 번째 회장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지루함을 참는 연습을 계속하고, 작은 만남에도 정성을 다하며, 나에게 즉각적인 이익을 주지 않는 관계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교양과 격식은 살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자신을 훈련시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산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와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