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

이창재의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를 읽고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1. 우연이 이끈 만남


점심 약속을 10분 남겨두고,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선릉역의 한 서점에서 저는 무심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획도, 목적도 없이 손에 들어온 책이었습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는 덮어두었고, 그렇게 잠시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주말 오후, 지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해야 하는 길. 문득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띠지 문구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서 이런 책을 들고 가는 게 맞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책을 챙겼습니다. 혹여 결례가 될까 싶어 외투 안쪽 깊숙이 숨겼습니다. 그렇게 삶의 끝자락이 모인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저는 비로소 이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2. 예고편조차 보기 힘겨웠던 ‘목숨’의 기록


이 책은 영화 <목숨>의 감독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한 마지막의 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영화를 찾아보려 했지만, 저는 끝까지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짧은 예고편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타인의 슬픔이 마치 제 슬픔처럼 전이되어, 예고편 속 짧은 마지막조차 끝까지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3. 냉정함이라는 이름의 가면


가족들은 종종 저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렇지만 그것은 어쩌면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워두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타인의 작은 슬픔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쉽게 아파합니다. 다만 그 여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외투로 책을 가리듯 감정을 숨겨왔을 뿐입니다.


4. 후회 없는 삶을 향한 질문


장례식장에서 지인의 부친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떠오른 것은 거창한 삶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그분이 제게 이야기했던 한 마디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네.”


책 속에서 만난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 역시 비슷한 후회를 남겼습니다. 더 벌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라, 아들의 졸업식에 가지 못한 일. 승진보다 아내와 저녁 식탁에 함께 앉지 못한 시간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본 삶은 역설적으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5. 삶의 끝에서 배운 가장 단순한 진리


책의 말미, 한 수녀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눈부시게 소중하며, ‘오늘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내일이 영원할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삶의 끝에서 바라본 진리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불필요한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
미워하던 이를 용서하고,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거창한 미래보다, 오늘을 사랑하는 태도.


그래서 오늘은, 가장이라는 외투를 잠시 벗어두려 합니다. 숨겨두었던 마음을 조금 꺼내 보려 합니다. 오늘이 아니면 하지 못할 말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덮으며 제게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오늘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