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아버지가 마흔의 나에게 건네는 말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다가 서른이 다 되어서야 늦게 교정공무원이 되셨다. 그 당시 서른이면 매우 늦은 나이였다. 교도소로 발령을 받으셨을 당시 나는 열 살도 안 된 아이였다. 제복을 입고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이토록 깊은 고뇌가 있었는지 여섯 살의 나는 읽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아버지의 책장에서 자료를 찾다가 빛바랜 일기장을 펼쳤다. 그곳엔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이나 어렸던, 한 젊은 가장의 서늘한 고백이 적혀 있었다.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지나가는 것일까? 생활의 리듬도, 생각의 여유도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이곳. 오직 세월의 흐름만이 있을 뿐, 적막과 고요만이 주위를 감돌고 쓸쓸함과 고독을 씹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옆에서 오고 가는 세월의 흐름을 멈추기라도 한 듯, 조용한 주위가 너무도 무섭다.
어찌해야 이 고통, 이 어려움의 생활을 뒤로할 수 있을까? 오늘도 굳은 마음으로 출근해서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하루, 아니 이틀 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나가면 다음날에야 돌아올 수 있는 이곳. 가정, 사회 모두가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남들은 생활이 어떻고, 사는 보람이 어떻고 하건만, 나의 삶은 어디에서 삶이며 보람을 찾아야 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끝없는 한탄의 메아리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리라.
믿음은 나의 목자이시니라고 말하셨다지만 나의 믿음은 무엇이려는 지. 인생의 참뜻을 생각해 보면 뜻 모를 이 마음속에 사무쳐 오는 것이 있다. 인생 30년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고 반문도 해 보건만,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것이 있겠지만, 허무하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슬퍼질 때도 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이 방법 이외에는 살아갈 수 없을까? 그렇지만 모든 사람 아니 모든 인간이 이렇게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나도 살기 위해서는 뛰고 날고 해서 남보다 훨씬 보람찬 삶을 영위해야 될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삶도 살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아니하고 항상 곁에 있다고 하던가? 등잔 밑이 어둡다.
아버지의 일기를 덮으며, 나는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나의 열아홉 살 아들을 떠올린다.
나는 지난 23년을 국세청에서 보냈다. 누군가의 은닉재산을 찾고 탈세를 적발하며 그것이 정의라 믿었지만, 문득문득 일기 속 아버지처럼 자문하곤 했다. "나의 보람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나는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컴플라이언스 책임자로, 컨설턴트로, 또 사업가로 살고 있다. 여전히 바쁘고 치열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여전히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 중이다.
이제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는 그 막막한 질문들을 품고도 30년을 그 자리에서 버텨내셨다. 그것이 아버지 나름의 정답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답을 수정하며 걸어오신 것일까?
나는 내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자꾸 고민해 보게 된다. 아버지가 내게 이 일기장을 남겨주셨듯, 나 또한 나의 방황과 고민,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깨달음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저 일기를 쓰고 4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조금이나마 깨닫는다. 행복은 정말 멀리 있지 않지만, 그것을 믿기 위해 우리는 이토록 오래 헤매야 한다는 것을. 훗날 마흔이 된 내 아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 아이 또한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그 질문 속에서 길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이미 너만의 답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