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라는 이정표

성장은 왜 늘 고통의 형상을 하고 오는가

몸이 기억하는 안락함이라는 함정


레슨 기록을 적은 나의 메모장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편하게 칠수록 안 맞는다."


참으로 잔인한 역설이다. 우리는 평생 '편안함'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심리적 안정, 안락한 주거, 익숙한 관계. 하지만 골프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편안함'은 곧 '퇴보'의 다른 이름이다. 내 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그 자세는, 사실 수백 번의 시행착오 끝에 굳어진 '정교하게 설계된 나쁜 습관'일뿐이었다.


골프채를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 내 몸은 자꾸만 익숙한 궤도로 돌아가려 한다. 가파르게 내려오는 스윙 패스, 자꾸만 펴지는 고관절, 흔들리는 중심축. 이 모든 것은 내가 지난 몇 년간 쌓아온 '나라는 사람의 관성'이다. 이 관성을 거슬러 맞는 길을 찾아가는 일은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왼쪽 고관절을 접으며 깨달은 것


"자세는 고통스럽지만 고치고 나면 발전이 보인다."


레슨 중 프로님은 끊임없이 주문한다. 왼쪽 허벅지를 접으세요. 오른쪽 허벅지를 접으세요. 기마자세로 좌우를 오가며 중심을 잡으세요.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얼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식은땀이 흐른다. 이 동작이 과연 공을 멀리 보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 '불편한 정점'에서 나의 생각과 다르게 공은 가장 반듯하게 뻗어 나간다.


비거리가 늘어났다는 숫자의 변화보다 더 놀라운 건, 내 몸의 '임계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궤도, 써보지 않은 근육을 사용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내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힘과 거리의 반비례


레슨 때마다 기록한 연습 노트를 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오히려 세게 치면 거리가 줄어든다. 그런데 힘이 들지 않아도 정타로 맞으면 더 멀리 나간다."


실제로 그랬다.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내리찍듯 휘두른 7번 아이언은 100미터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프로가 시킨 대로 그립을 가볍게 잡고, 궤도만 신경 쓰며 툭 쳐낸 공은 120미터를 가뿐히 넘겼다. 손에 전해진 임팩트는 놀라울 만큼 가벼웠다.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공만 멀리 갔다.


우리는 인생에서도 종종 이런 실수를 범한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더 큰 힘을 들이고, 더 가파르게 몰아붙인다. 하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못 미친다. 결국 핵심은 '강도'가 아니라 '궤적'에 있었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얼마나 정확한 '길(Path)'을 걷고 있느냐가, 얼마나 '열심히' 휘두르느냐보다 중요하다는 것.


드라이버가 '확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필요한 건 더 강한 스윙이 아니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중심축을 잡고 고개를 살짝 드는 여유. 그것뿐이었다.


다시, 기꺼이 불편해지기로 했다


"정말 힘든 만큼 늘어나는 건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힘든 만큼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느껴지는 그 지점'이 바로 내가 바뀌기 시작하는 시작점이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수건을 끼고 상체를 비틀어본다. 여전히 왼쪽 엉덩이에 무게 중심을 싣는 것은 어색하고, 상체를 오른쪽으로 둔 채 왼쪽 어깨만 빠져나가게 하는 동작은 고역이다. 하지만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내가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다.


내일의 연습장에서 나는 다시 '안 맞는 느낌'과 사투를 벌일 것이다. 편안함이라는 독약을 거부하고, 기꺼이 고통스러운 정답을 선택할 것이다.


거울 앞에서 다시 한번 수건을 끼운다. 왼쪽 고관절이 욱신거린다. 아직 자랄 수 있다는 뜻이다. 공이 나가지 않을 것 같은 그 불안한 자세에서 비로소 가장 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아마도 나는 다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쓴 자와 쓰지 않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