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주변이 없다는 말을 남들은 믿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얼굴이 빨개지던 아이의 강의 노트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중년의 두 아주머니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게 있었다. 학부모회 임원 선출이 다가오는데, 자녀가 한번 나가보라고 권했다고.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눈이 하얗게 되고 실신할 것 같아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모른 척 서 있었지만, 그 말이 버스가 떠난 뒤에도 한참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이 하얗게 된다. 실신할 것 같다. 그 감각을 나는 안다. 정확히 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말주변이 없었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다들 겸손하다고 웃어넘긴다.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무슨 소리냐고 말한다. 하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을 알면 그런 말은 못 한다. 나는 수업 시간에 일어서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할 말이 있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반장을 처음 해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것도 쉽게 손을 든 게 아니라 주위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강의를 하게 된 건 국세청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국세청이 강제로 만들어준 역할 때문이었다. 조직 안에서 교육을 맡게 되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 명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억지로, 그다음엔 어쩔 수 없이, 그러다 어느 순간 편해졌다. 타고난 게 아니었다. 단련된 것이었다.


강의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그렇게 긴 시간이 쌓인 뒤의 일이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떨린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가슴이 약간 조여들고 숨이 얕아지는 그 몇 초. 처음에는 그것을 없애려 했다. 지금은 그냥 둔다. 떨림이 없다는 건 그 자리에 무감각해졌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말을 하다 보면 그런 감정은 이내 사라진다.


작년 봄, 아이 학교 체육관 맨 앞줄에 앉았던 날이 생각난다. 10명의 학부모위원 후보 중 유일한 아버지였다. 주변은 온통 어머니들의 조용한 수다와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어머니들 사이에서 나만 겉도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지원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작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음은 정해인 학부모님의 소견 발표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대로 올라서자 백여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연단에 선 나는 준비했던 첫인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잠시 머뭇거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정해인이라고 합니다.”


내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눈앞의 빛이 순간 흐릿해졌다가 돌아왔다. 준비했던 무거운 내용을 포기하고 썰렁한 농담으로 시작했다.


“연예인 정해인 씨와 이름만 같고, 얼굴은 많이 다르네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은 풀렸다. 무대 아래를 둘러보니 아버지는 고작 세 명뿐이었다. 준비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흐트러졌다. 화려한 말솜씨도, 교육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경력도 없는 나는 무엇을 내세워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저는 오늘 유일한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머니나 아버지나 동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 다른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이 다양한 시선이 모여 우리 아이들을 더 넓게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머니들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이 보였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그리고 공감으로.


“어릴 적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언어가 아니라 뒷모습을 보고 자라난다’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늘 애쓰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으로 학교에서 잘 활동해 보겠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어릴 적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마지막 말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박수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투표용지가 나눠지고, 모아지고,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수험생처럼 목이 늘어지게 기다렸다.


“46명, 최다 득표로 선정된 5번 정해인 학부모님입니다.”


눈으로 보았지만 믿기지 않았다. 주위 어머니들의 축하 인사가 들렸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가 되었다는 생각에 부담이 밀려왔다. 그러나 오늘 무대 위에서 느꼈던 떨림과 아이를 향한 사랑이 이 책임을 감당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보았다.


아직도 강의가 낯설다. 하지만 내가 여러 곳에서 청중을 만나다 보니, 강사의 어떤 순간이 청중에게 닿는지를 몸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강의 현장에서 보고 느끼며 쌓은 것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추임새를 버려라.

“어…”, “네…”, “자…” 이런 추임새들. 말하는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듣는 쪽에서는 꽤 선명하게 들린다. 정적이 불편해서 소리로 메우려는 본능인데, 그 빈틈을 그냥 두는 편이 낫다. 추임새가 반복되면 청중은 서서히 강사의 전문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반면 의도적인 침묵은 다음 문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청중의 시선을 다시 끌어당긴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건 강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째, 다섯 명을 찾아라.

수많은 얼굴을 한꺼번에 보려 하면 오히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청중 중에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 다섯 명 정도를 먼저 찾는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거나,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 짓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며 강의가 아니라 이야기를 건넨다. 한 명만 계속 보면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혹시 이성이라면 더 곤란해질 수도 있고. 다섯이라는 숫자가 딱 좋다. 그 다섯 명과 대화하다 보면 나머지 청중도 자연스럽게 그 온도 안으로 들어온다.


셋째, 100%를 포기하라.

나는 오랫동안 내용의 완벽한 전달에 집착했다. 세금 강의를 할 때 특히 그랬다. 개념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설명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메라비언의 법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메시지 전달에서 언어, 즉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7%다. 나머지 93%는 목소리의 결(38%)과 표정, 손짓, 몸짓(55%)이 채운다. 청중은 당신의 논리보다 당신의 확신을 먼저 느낀다. 내용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눈빛이 살아 있다면, 그 강의는 이미 청중의 마음속에 닿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 일어서면 얼굴이 빨개져서 말 한마디 못 하던 아이가 지금은 강의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그냥 오래 서 있었을 뿐이다. 그사이, 떨림을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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