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다
세무법인에 전무로 합류하던 초기, 나는 처음으로 난감한 질문 앞에 섰다.
"이번 건은 얼마나 받으면 될까요?"
나는 대표 세무사님께 물었다. 조사관 시절에는 그런 질문이 없었다. 월급은 국가가 정했고, 나는 그냥 일만 하면 됐다. 그런데 이름을 걸고 클라이언트를 마주하는 자리에서 처음 맞닥뜨린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요금표라는 게 없는 세계에 온 것이다.
세무사님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되물었다.
"이 건으로 의뢰인이 얼마나 이득을 봐요?"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 가격을 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배웠다.
첫째는 내 시간의 값이다. 단순히 앉아 있던 시간이 아니라, 수십 년의 경험이 농축된 그 한 시간을 어떻게 환산할 것인가. 의사가 10분 진료에 받는 진찰료 안에는 의대 6년, 수련의 4년이 녹아 있다. 전문가의 시간도 그렇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무겁다.
둘째는 결과물의 밀도다. 보고서라고 다 같은 보고서가 아니다. 허름한 A4 한 장과, 이익과 손실의 분기점을 짚어주는 논문 수준의 분석은 형태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물건이다.
셋째는 의뢰인이 얻을 혜택이다. 자문 하나로 3억이 절세된다면, 천만 원을 받아도 의뢰인은 이익이다. 그러나 혜택이 5천만 원도 안 되는데 3천을 부를 수 있을까. 전문가의 보수는 의뢰인의 이득 규모와 어느 정도 연동되어야 한다. 그게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넷째는 응능부담(應能負擔)이다. 세금의 세계에 있는 개념이다. 담세력, 즉 부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원칙. 컨설팅 요금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라도 의뢰인이 감당할 수 없다면, 그 가격은 가격이 아니라 문턱이 된다.
다섯째는 시가(市價)다. 다들 오백을 받는데 나 혼자 천을 부르면, 나는 탁월한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비싼 사람이 된다. 시장은 냉정하다.
세무사님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못 받겠으면, 그냥 보내요."
배운 기준을 처음 직접 적용하게 되었다.
양도세 신고였다. 시중 수수료는 30만 원에서 50만 원. 우리는 500만 원을 불렀다. 고객은 당연히 물었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나는 설명했다. 이 건은 특정 공제 항목이 인정되느냐 안 되느냐를 놓고 해석이 갈리는 사안이었다. 그 판단 하나에 따라 고객이 부담할 세금이 3억 이상 달라졌다. 신고를 잘못 냈을 때 가산세만 3천만 원이 넘었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만 해주면 우리 부담은 없다. 그냥 신고서 한 장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무조사에 불복 심판까지 대비한 논리를 구성했다. 지금 당장은 비싸 보여도, 세무조사 대응 선임료와 소송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오히려 싼 비용이었다.
고객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진행하자고.
가격대가 맞지 않으면 그냥 보낸다. 배가 불렀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다. 낮은 가격에 대충 할 바에는 차라리 안 받겠다고 말한다. 돈을 받은 만큼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돈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상한 일이 그다음에 생긴다. 다른 데 가라고 해도 꼭 해달라는 클라이언트가 생긴다. 전문가의 자존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설득이 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배웠다.
결국 싼 요금이 최고가 아니다. 가격표 뒤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30만 원짜리 신고와 500만 원짜리 신고는 종이 한 장이 나오는 건 같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것이 다르다. 하나는 신고서고, 하나는 방어막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전문가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싼 것과 비싼 것이 같은 물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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