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90세의 나에게 묻는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강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한창 바쁘게 일하던 시절, 일주일에 세 번씩 장례식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영정 사진 아래 적힌 숫자들을 무심코 읽게 되었다.

85, 87, 91.


‘아, 90세쯤이면 나도 저쯤에서 멈추겠구나.’


슬픔의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내 끝을 가늠하고 있었다. 조금 더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게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문득 90세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고객 미팅 20분 전이었다.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아 미팅 장소까지 걸어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10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책을 펼쳤다.


거창한 의지는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운동할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쉽게 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소개받은 고객분들은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들어왔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 세월이 얼굴에 배어 있는 분들이었다.

내가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바쁜데 언제 책을 읽으세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렇게 잠깐 시간이 날 때마다 읽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우리도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못해요.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 오히려 몸을 낮추는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인생의 선배들 앞에서 건방져 보일까 싶었지만,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지 말씀드리고 싶었다.


“저는 항상 90세의 저를 떠올립니다.
이제 인생의 절반쯤 살았으니, 90세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공부하고, 운동하고, 책 읽으라고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분들이 웃으며 말했다.


“대견하네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강이 있다.

그분들은 그 강의 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강을 완전히 건너는 것이 아니라, 평생 건너려 애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90세의 나는 아직 멀리 있다.


하지만 오늘, 미팅 10분 전
걸어온 땀이 채 식기도 전에 책을 펼친 나를 보며
90세의 나는 환하게 웃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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