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뒤의 다음차
사람이 가득찬 버스를 탄다. 퇴근길인지라 사람들이 빽빽하게 버스 안에 들어선다. 다음 차를 탈껄. 차라리 걸어갈껄 그랬나를 수 없이 반복하며 묵묵히 버스를 타고 간다.
이번에 탄 버스 기사 아저씨는 유난히 거칠다. 차문을 열고 닫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아예 사람들이 다 내릴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닫아도 될텐데 내릴려고 하면 닫고 하는 실랑이를 수 차례 한다.
버스 아저씨는 기분이 나쁘셨는지 육두문자의 욕을 하시며 거칠게 문을 닫고 다시 운전을 한다. 집까지 이제 3정거장쯤 남았는데 '그냥 내려야 하나'하는 불안감이 든다.
이런 버스를 뭐하러 타나? 그렇게 가지 않을 것같은 3개의 정류장을 지나쳤다.
피난 행렬을 탈출하듯 버스에서 나오니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바로 뒤에 같은 번호의 버스가 이어온다. 버스 안에 사람들은 대부분 앉아서 오며 서 있는 사람조차 없다. 나는 뭐하러 이렇게 고생을 사서 했을까? 1분의 시간을 절약하려고 그리 힘든 시간을 보낸걸까?
급한 것도 없는데 다음차를 탔을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잠깐, 나는 왜 그 버스를 탔을까?'
'다음 차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아니다. 버스가 오니까 자연스레 탔다. 버스 문이 열리니까 올랐다. 승객이 만원이면 배차 간격이 길어졌다는 뜻이고, 다음 차는 금방 온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채 그냥 탔다. 남들도 다들 타고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빌딩을 처음 찾았다.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뒤에 섰다. '줄이 이렇게 길면 기다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문이 열렸을 때에야 알았다. 상층부 엘리베이터였다. 나는 저층부로 가야 했는데. 옆에는 사람 없는 저층부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버스도, 엘리베이터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남들의 흐름에 올라탔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이 곧 맞는 방향이라는 등식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따르고 있었다.
물론 그게 틀린 건 아닐 때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군중은 나름의 이유로 움직인다. 그러나 군중이 항상 나의 목적지를 알고 움직이는 건 아니다. 버스를 타야 할 이유가 나에게 있는지, 저 줄이 내가 서야 할 줄인지— 그 단순한 질문 하나를 나는 건너뛰었다.
문득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현재의 내가 항상 과거의 나를 뛰어넘는 것은 아니구나. 자극이 오면 잠깐 멈추는 대신 그냥 반응한다. 남들이 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나도 그쪽으로 발을 옮긴다. 그러고는 나중에 후회한다. 왜 그랬을까, 하고.
그렇게 반추하지 않으면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있을 나의 의식수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아주 짧은 틈이 있다. 그 틈에서 내가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또 놓쳤다. 그래도 놓쳤다는 걸 아는 오늘이, 몰랐던 어제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