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극장에서 온 제임스

이름이 한 사람의 방향이 되기까지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그의 어린 시절, 스크린은 건물이 아니라 하늘 아래 있었다.


겨울밤, 벼를 베어낸 논 위에 흰 천막이 올라갔다. 화물차가 마을 어귀를 돌며 가설극장의 개장을 알린다.


전기도 가물가물했고, 영사기 소리는 덜커덩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논두렁도, 흙냄새도 잠시 사라졌다. 스크린 속 세상이 현실이었고, 현실은 그 너머였다.


그날 밤, 소년은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를 봤다.


세계를 누비는 슈트를 입은 남자.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 들어본 적 없는 도시 이름들.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저 세계가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저 세상에 가야겠다."


막연했다.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감각만큼은 평생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무역 일을 시작하면서 영어 이름을 골라야 할 순간이 왔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제임스


논두렁 극장에서 올려다보던 그 이름. 다른 이름은 애초에 생각도 안 났다고 했다. 그냥, 당연하게. 마치 오래전부터 자기 이름이었던 것처럼 제임스를 골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출장길에 우연히 들른 민박집에서 그 이름은 처음으로 보답을 했다. 민박집 사장님 이름도 제임스였다.


"어, 나도 제임스인데."


그 한 마디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밥상이 넉넉해졌고, 잠자리가 따뜻해졌고,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편안한 밤을 보냈다. 이름 하나가 만들어준 인연이었다.


제임스 사장님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그때부터 제임스라는 이름한테 고마워요. 진짜로."


이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름을 고른다고 믿지만,

어쩌면 어떤 이름이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논두렁에서 올려다본 스크린 속 남자의 이름이, 수십 년을 건너 민박집 사장님의 입에서 다시 불려지는 것.


제임스라는 이름은 그에게 단순한 영어 이름이 아니었다. 해외로 나가야겠다는 최초의 결심이었고,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온기였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긴 이야기의 첫 문장이었다.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꺼낼 때,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지금 아이들은 꿈꿀 틈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금은 손안에 스크린이 있다. 원하면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세상 어느 도시도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온몸으로 감응하는 순간은 줄어든 것 같다. 너무 쉽게 가질 수 있기에 순간순간의 감동이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가설극장의 소년은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영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넘쳐서 흘러가는 것과, 가물어서 흡수되는 것은 다르다.


그는 그 한 편의 영화가 준 방향을 평생 잃지 않았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그래도 걷는 방향만큼은 헷갈리지 않았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처음 감지한 그 방향으로.


어쩌면 꿈은 찾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무언가에 감응하는 경험일 것이다. 그게 영화 한 편일 수도 있고, 책 한 줄일 수도 있고, 스크린 속 이름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감응을 흘려보내지 않고 가슴에 남기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오래 간직하는 것.


제임스 사장님은 오늘도 어딘가의 공항에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을 달고, 그가 올려다보던 그 세계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세무조사가 만든 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