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낮 점심 메뉴로
또다시 냉전은 시작되었다
어른이 먼저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의견도 들어주자는 나의 주장
어쩌면 그건 점심 메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고방식 차이의 문제였다
대가족에서 살아왔던 아내
그래서 늘 아이들보다는 어른을
특히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의견을
존중했던 분위기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아이들은 어른의 의견에 잘 따라야 하고
어른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달리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으로
내가 원하는 식단을 많이 차려주셨다
오히려 어머니가 장남인 나를 더 챙겨주셔서
남동생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 생활환경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먼저 의견을 구하고
웬만하면 의견을 따라주려 한다
우리는 그런 사고방식의 차이를
존중해주기보다 서로 자기 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분쟁상태로 만든 건
나의 책임도 많이 커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하나 하다가
새벽에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 내게
아내가 옆에서 "김밥 참 맛있어 보인다"
라는 말을 하고는 방으로 사라졌다
새벽에 김밥을 만들지는 못하기에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김밥을 시작했다
일단 밥통을 열었는데
밥이 없다 저걸로는 1인분도 못 싸겠다 싶어
밥을 했는데 나중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햄으로 속을 넣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스팸으로 대신했다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스팸
한 번 뜨거운 물에 데쳐서 볶았는데
돼지 비린내가 좀 난다
이번엔 지단
일단 한쪽면은 그런대로 익어가는데
뒤집는 과정에서 아뿔싸 찢어졌다
가슴이 찢어지듯 속상하다
나머지 한 장을 더 부쳤다
우리 집 식성 좋은 하마 두 분이 있어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드신다
하지만 두 번째 장도 실패
지단은 내겐 너무 힘든 미션이다
이번엔 당근
다행히 썰어놓은 당근이 있었다
얼마나 익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볶다 꺼냈다
아내가 김치 볶음을 해 놓은 게 있어서
그것도 조금 꺼냈다
물기가 많은 채로는 쓸 수 없어
프라이팬에 바짝 볶았다
문득 차라리 김치볶음밥이나 할걸
괜한 짓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벌려 놓은 것들이 많아
여기서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나 밥통을 열었을 때의 난감함
거의 10인분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밥
'저 많은 밥을 언제 다 말지?' 하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식탁 앞에 앉았다
두 하마 분들 눈치를 채고 의자에 앉아
먹이를 기다린다
김밥 한 줄을 싸자마자 냉큼 먹어치운다
아빠가 만든 건 무조건 OK이라며
맛으로 먹는 건지 허기로 먹는 건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대충 김밥은 완성되었다
아내가 부디 대충 김밥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