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21. 2019

주말 요리사

아빠의 대충 요리 기록장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아내 대신 주방에 나섰다. 마땅히 생각나는 메뉴는 없고 어제 사온 돼지고기를 넣고 롱빈 볶음이나 할 예정이었다.




’야채도 함께 챙겨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오이를 썬다. 오이를 먹어보니 약간 씁쓸하다. 고추장 동반이 필수로 보인다.


일단  파 기름을 만들어준다. 냉동실에 있던 파를 기름에 넣으니 사방팔방으로 기름이 튄다. 아내를 도와주려다 일만 더 만든 느낌이다.

파향이 잘 올라올 때쯤 잘게 썰린 돼지고기 한 팩을 넣었다.

파는 보이지 않고 온통 돼지고기 천국이다.

주위에 보이는 기름방울. 닦이기는 하겠지?

돼지 비린내가 올라온다.

이래서 정작 요리를 하는 사람은 식욕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돼지고기가 살짝 노란빛을 띨 때 냉동 롱빈을 쏟았다. 야채는 바로바로 먹어야 제 맛인데 냉동했다 다시 요리를 하니 살짝 찔깃하다.

굴소스와 간장으로 대충 간을 마치고 요리를 마쳤다. 그런데 오이와 볶음 만으로는 아쉽겠다 싶어 냉장고를 뒤적였다.


어제 사온 콩나물이 보인다. 아내에게 상의도 없이 그냥 콩나물 볶음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가 콩나물밥하려고 씻어두었던 콩나물

인터넷을 찾아보니 성실이네 아줌마의 레시피가 보인다.

간장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넣으라는데 맛술도 안 보이고 레시피에 나오는 그 용량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청주 대신 쓰다 남은 와인을 넣고 정체 모를 양념장을 완성했다.

매운거 못드시는 남매님때문에 고추가루는 눈에 티만큼

팬을 바짝 달구고 기름을 두른다.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한다. 기름 위에 콩나물을 넣으면 난리가 나겠지?

어마어마한 소리가 난다. 콩나물이 튀겨지는지 볶아지는지 모르겠다. 숨이 죽을 때까지 볶으라는데 얼만큼 볶아야 죽는 건지 모르겠다. 볶으면서 나는 소리가 콩나물이 죽으면서 내는 비명소리인가 싶어 잠깐 슬펐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숨 죽자마자 양념을 넣고 볶아야 하니까.

양념을 넣으나 안 넣으나 색깔이 똑같다. 간장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매우 짜다.

반찬을 대신했으니 사모님이 괜찮아할 거야 라며 계속 자기 위안을 한다.

그렇게 얼렁뚱땅 콩나물 볶음이 완성되었다.


아직 11:30이지만 점심을 차린다.

야채에 김치까지 꺼내 놓고 나니 제법 그럴듯하다.

의례히 그러는 것인지 다들 맛있다며 잘 먹어준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겠다 싶다.


점심을 마친 주말 요리사.

‘저녁에 뭘 먹지’ 벌써 고민을 하다

월남쌈으로 결정했다.

야채부터 과일까지 고난의 칼질이 시작되었다.

삼시 세끼 먹이는 아내가 존경스러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해의 제스처, 대충 김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