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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07. 2019

그림과 바람나다

내게는 바람이라고 하면 공기의 흐름인 바람이나 무엇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바람보다는 사랑으로 인하여 흔들리는 마음. 주로 연애 상대자를 바꾸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바람이 더 떠오른다. [출처 위키 낱말 사전]

그렇게 내게는 바람이라는 단어는 좋지 않은 뜻으로 다가온다. 

어딘가 모르게 부정적 기운이 감도는 단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내 삶에 있어 그림에게는 바람이라는 단어를 붙여줘야겠다. 


회사를 다니며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정확히는 보고서에 들어가는 도식화된 이미지들이었다.

세금에 관한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장의 그림처럼 그려냈다. 

보고서 한 장에 모든 문제점을 담아야 했고, 핵심 문제점 1가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모두 담아 그림으로 잘 표현해야 했다. 

수십 장, 수백 장의 보고서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문제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숙련이 되면서 정확하게 문제점을 그림으로 도식화하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었다. 내게 어려움은 숙련이 될수록 쓰린 가슴 한 켠이었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잘못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게 그런 그림은 마치 외과의사가 오염된 환부를 칼로 도려내듯 수술칼을 휘두른다는 느낌이었다. 분명 나쁜 것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수술을 받는 이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칼을 쓰더라도 수술을 집도하는 칼이 될 수도 있지만 조각을 하거나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칼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그림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행복하게 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보고 있자면 행복해지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제 그림을 시작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은 시작이라 그런지 그림이 주는 행복감보다는 손에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이 더 크다. 언젠가 손에 익다보면 그림이 글자만큼이나 쉽게 다뤄질 날이 오겠지. 그림이 나에게 쓰린 고통보다는 행복감을 주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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