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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순이 Aug 06. 2022

프리레틱스와 운동 안 하면 안 되는 여자

어린 시절부터 통통한 아이로 살아왔다. 중학생 때 일산 호수공원에 말 좋아하던 가수가 공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달려가 맨 앞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수가 등장하던 순간 그 감동을 잊지 못해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었나 보다. 그때 유명 개그맨이었던 사회자가 나를 향해 말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야! 저기 뚱뚱한 애 조용히 좀 해!"


소심한 성정이 어딜 갈까. 지금 그런 상황을 마주해도 그냥 속으로 삭히며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글이나 남기며 풀고 말겠지. 하지만 그땐 한창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이었다. 좋아하던 연예인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수치심과 모멸감에 몇 달간 괴로웠다. 그래서일까. 운동하는 여자가 아닌 운동 안 하면 안 되는 여자로 살아오길 십수 년, 이제는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다이어트는 나에게 숙명과도 같다.


잡설이 길었다. 여하튼 30대를 맞이하며 헬스, 스피닝, 걷기, 필라테스, 그리고 크로스핏 등 많은 운동을 섭렵하며 운동을 생활화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는 바디 프로필도 찍었다. 태생부터 유교걸인 바 요즘 난립하는 이른바 섹시 콘셉트의 사진은 찍지 못하고 운동복을 입고 소심하게 복근 정도 보여주는 사진을 찍었고 그것도 자랑스럽게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고 2개월이 훌쩍 지났다. 식스팩이 식스"팻"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느낀다. 운동을 꾸준히 해 왔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운동 자체가 나의 데일리 루틴으로 자리하는 것이 실패한 탓이다. 물론 바쁘기도 했다. 사실 운동은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이직과 맞물려 너무 바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시간을 일부러 낸다"는 자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크로스핏은 나름 재미있게 했다. 하지만 '경쟁' 및 '성과 달성'을 키워드로 하는 크로스핏은 자세의 반복으로 인해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있다. 또한 집중이 필요한 운동 동작이 많은데 집중하는 것 대신 성과를 달성하는 것에 치중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부상 위험이 매우 컸다. 물론 운동을 통한 근력 향상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운동으로 몸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에서 크로스핏은 많이 벗어나 있다. 특히 승모 쪽에 근육이 과도하게 잡히는 경향이 있어 목이 짧아지니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내가 야리야리하게 보이는 8할이 목인데 핏은 사라지고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는 느낌!


이전 PT를 처음 배울 때 기구를 사용해서 고립된 운동을 해야 근력이 향상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크로스핏은 무거운 기구를 빠르게 들어 올리고 내리고 하는 동작이 반복되니 부담스러운 느낌이 컸다. 결정적으로 박스 점프를 하다가 두 번 정도 넘어지고 나니 겁이 덜컥 나더라. 정강이에 길게 생긴 흉터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크로스핏 박스 내 회원들 간의 친목도 내향적인 내겐 약간 불편했고, 위치도 집에서 애매하고 수업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기타 등등의 핑계로 크로스핏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의 메커니즘 자체는 마음에 든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매일매일 바뀌는 루틴과 실생활에 필요한 근력 함양이라는 목적 자체도. 하지만 단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 크게 보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대체할 만한 운동을 찾고 있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서 습관처럼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그런 것.


바프 이후 성실하고 규칙적인 음주를 통해 식스 팻을 얻고 다시 돼지가 되었음을 망각하고 있을 즈음 다시 프리레틱스(Freeletics)가 기억났다. 이 운동은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바벨이나 덤벨 등 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오로지 맨몸으로, 적은 비용과 작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아웃풋을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단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맨몸 운동이라는 점이 좋았고, 출장지에 가든 여행을 가든 언제 어디서든 작은 공간 안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사회 부적응자 같은 느낌이지만 프리레틱스는 타인과의 불필요한 인터랙션이 없는 것도 좋았다. 다만 버피 등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동작이 포함되어 있어 아래층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1분 거리인 헬스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간단히 리서치를 한 뒤 바로 1년 이용권을 결제했다. 몸 상태와 목적(카디오 집중, 근력 향상 집중 등)에 따라 6주, 12주 프로그램으로 나뉘고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프로그램을 바꿔서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다. 1년 이용권은 약 8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나의 의지라는 비싼 값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겠지만. 나는 카디오와 근력운동이 적절히 섞여 있는 12주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소요시간은 20~40분


이 운동은 어떨까 기대가 된다.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 숙명처럼 변해버렸다. 물론 긍정적인 일이다. 땀을 흠뻑 흘리고 귀가해 맥주 한 잔 마시는 그 순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으니까. 부디 꾸준하게 할 수 있길 바란다. 부디 열심히 운동하며 어린 시절의 내게 돌아가 그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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