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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l 06. 2023

일인분의 사랑

1박 2일 동안 그녀가 나에게 떼어 준 마음


  생일 전날 이주와 함께 남이섬으로 떠났다. 나는 용산역에서 이주를 만나 기차를 타면 금방 가평역으로 갈 수 있지만 이주는 군산에서 익산으로, 익산에서 용산으로, 용산에서 가평으로 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심지어 군산에는 많은 비가 쏟아지던 상황. 하지만 가평에 도착한 이주는 여기까지 오는 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주의 맑은 얼굴을 보며 나도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이주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서울엔 비가 오지 않았었는데, 배를 타고 남이섬에 도착한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이주는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식당에서 닭갈비와 메밀전병, 막국수, 추억의 도시락 등 먹고 싶은 메뉴를 전부 시켰다. 식사를 하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는 점점 거세졌고, 우리는 서로에게 용해됐다.



 식사를 마치고 이동할 때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멀쩡하던 이주의 우산도 갑자기 고장나버렸다. 우리는 마트로 가서 밤에 마실 샴페인과 함께 우산을 샀다. 이주는 케이크가 꼭 있어야한다고 발을 동동댔지만, 남이섬에는 빵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카페에 가서 디저트용 케이크 세 개를 포장했다. 이주는 남이섬에서 케이크를 못 구할 줄 몰랐다며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너만 있으면 된다고 다독였지만 이주는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바람과 비를 뚫고 다시 숙소로 도착한 후, 우리는 침대에 앉아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남이섬을 산책한 뒤에 자전거를 타고 야식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전부 어그러졌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건 서로밖에 없었다. 나는 이주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이주는 쉬지 않고 나를 웃겨줬다. 이주를 만나면 웃을 일이 너무도 많다. 배 깊숙한 곳에 고등학생 때부터 이주가 만들어준 근육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2시가 되자 우리는 샴페인을 터트리며 같이 생일 축하를 했다. 이주는 Z세대답게 핸드폰으로 촛불을 켜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기쁘게 촛불을 불며 소원을 빌었다. 이주와 평생 함께하게 해주세요, 같이 훈훈한 소원을 빌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돈에 눈이 멀어서 세속적인 욕망을 촛불 앞에 꺼내놨다. 물론 이주랑 평생 함께하는 건 소원으로 빌지 않아도 이뤄지겠지.


 목욕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저녁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종일 떠들었다. 핸드폰도 보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집중했다. 끊임없이 얘기하는데도 계속해서 할 말이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같은 반에서 생활했을 뿐인데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다니. 내 운의 반절은 이주를 알게된 것에 쓴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혀 아깝지 않다.


 다음 날에는 비구름이 모두 걷히고 하늘이 맑아졌다. 새벽 늦게까지 떠든 탓에 우리는 쉽게 잠에서 깨지 못했다. 조식도 못 먹었고 12시에 타기로 했던 레일바이크도 못 탔다.


 호텔에서 부랴부랴 나와 배를 탄 다음, 가평에서 닭갈비를 (또) 먹고 용산역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홀케이크를 꼭 선물하고 싶다는 이주의 말에 따라 투썸플레이스로 향했다. 우리는 아이파크몰 안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마주 앉아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생일날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는 건 처음이라 추억 생성 중독자인 나로서는 기뻤지만, 이주는 자기가 생각했던 생일 축하는 이게 아니었다며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케이크를 다 먹고 아이파크몰에서 윈도우쇼핑을 한 다음 용산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이주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헛헛한 마음이 온몸에 혈액처럼 퍼진다.


 집에 돌아오니 이주가 미리 보내준 생일 선물이 도착해있었다. 선물은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토끼 인형. 내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찜해 놓았던 거다. 가끔 내가 너무나도 혼자일 때, 토끼 인형을 안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주가 이틀 동안 나에게 준 사랑은 1인분을 한참 초과했다. 나는 이주가 준 사랑을 조금 더 잘 담기 위해, 그리고 나도 이주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기 위해 마음의 평수를 늘려야겠다. 잘 사랑하는 것도, 잘 사랑받는 것도 너무 어렵지만, 어려운 만큼 잘 해내고 싶다. 나는 얼만큼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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