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즐거우니까
“당신이 경험했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신이 나서 밤새 꺼낼 추억을 최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꿈의 여행지’ 역시 가슴 한켠에 하나 정도 품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왜 이렇게 자꾸 떠나고 싶어 할까.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그 질문에 의외로 또렷한 답들을 건네는 책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여행을 소설의 플롯에 비유한 대목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결국 예상하지 못한 다른 것을 얻어 돌아온다. 여행도 그렇다. 출발 전에 계획한 목적은 있을 수 있으나, 진짜 이야기는 길 위에서 새로 생겨난다. 당연히 누구도 결말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여행과 소설의 플롯은 닮아 있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여행은 고통이 묻어 있는 현실의 공간에서 떠나기 위한 일.”
여행을 왜 떠나는가. 재충전, 호기심,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지금의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피로감에는 과거의 기억이 남긴 찌꺼기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면 이상하게도 ‘오롯이 현.재.’만 남는다.
내게는 20여 년 전의 인도 배낭여행이 그랬다.
첫 해외여행이었고 영어 실력은 처참해서 하루하루가 서바이벌 같았다. 먹을 것, 자는 곳을 해결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말 그대로 살아남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했을 때는 무척이나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딴 생각 없이 오로지 현재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했던 환경. 어쩌면 그것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또 흥미로웠던 건 “직접 다녀온 것만 여행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타인의 경험을 보고 듣는 것도 여행이라는 것.
독서가 간접경험이듯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인에게 여행을 대신 시키고 그 기록을 남겼다는 과거의 사례는,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여행’이라는 단어의 경계를 한 번 더 넓혀준다.
무엇보다 가장 공감했던 건 여행을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로 정의한 대목.
여행은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확인하러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노바디(nobody) 임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말.
이걸 오디세우스와 키클롭스의 일화로 풀어내는 방식이 기가 막히다.
괴물 키클롭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눈을 찔린 뒤 울부짖자 주변 괴물들이 묻는다. “누가 너를 공격했냐?” 그때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가 속여 말한 가짜 이름 Nobody를 외친다. “Nobody is killing me!”
그저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장면이, 사실은 허세와 자만으로 가득했던 오디세우스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됨으로써 위기를 빠져나오는 이야기라니.
신화의 한 장면을 ‘주인공이 비로소 여행자가 되는 과정’으로 읽어내는 해석이 감탄스러웠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라..
생각해 보면 여행은 내가 내려놓는 만큼 나를 가볍게 한다.
짐을 내려놓으면 허영과 자만도 함께 내려간다. 그러니 타자에 대한 존중이 올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터. 이래저래 여행은 이롭다.
저자가 어릴 적 셀 수 없이 전학과 이사를 다녔고, 때문에 다른 여행기들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는 욕구를 일찍 품게 됐다는 서사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은 그런 특별한 이력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여행은 한 번쯤의 행복과 해방을 선사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누구나 자기만의 여행 이야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고, 가보고 싶은 곳도 품고 살고, 기회만 되면 언제든 떠나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굳이 여행의 이유를 꼬치꼬치 다 설명해야만 여행이 성립하는 걸까?
삶과 글쓰기와 신화까지 이어 붙여야만 충분히 그럴싸해지는 걸까..
아. 물론 이 책은 너무너무 재미있다. 그냥 나는 나 나름대로 이유 없는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서 끄적끄적 써본 거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여행은 즐겁다.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