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올 것인가
가까운 미래, 기술의 진보, 특히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AI 2041]은 그 질문에 꽤 영리한 방식으로 답한다. 먼저 짧은 소설로 “가능한 미래의 장면”을 보여주고, 이어서 그 소설의 배경이 된 기술 (딥러닝, 딥페이크, 자율주행, 양자컴퓨터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해설한 뒤, 끝으로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이 동일한 리듬을 공유한다.
읽기 전부터 가장 관심이 갔던 편은 ‘구원자’였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거 대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기계의 생산성 덕분에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고, 이전보다 풍요로운 시대가 열릴까. 창의성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며 예술과 사유에 전념하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질까.
이 주제가 유독 끌렸던 이유는, 일자리 문제는 AI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여러 산업에서 진행 중인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촉매일 뿐, 질문은 더 오래전부터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구원자’ 에피소드는 기본소득, 가짜 노동 같은 이미 익숙한 대안들을 소설 속 장면으로 구현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결론은 다소 교과서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사회 전체가 경제의 방향 전환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해법이나 확실한 처방을 기대했다가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모두를 설득할 만큼 뾰족한 대안이 이미 존재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정책과 제도는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책이 ‘정답’ 대신 ‘판단의 무게’를 독자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미래를 극단적 디스토피아로도, 장밋빛 유토피아로도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충분히 일어날 법한” 장면들을 담담하게 제시하고, 그 장면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10개의 에피소드가 공통적으로 겨누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 가능성이다.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키 메시지.
예를 들어 ‘황금 코끼리’에서 진보한 딥러닝이 탑재된 금융·보험 서비스는 가입자의 행동을 오로지 효율과 수익의 방향으로 최적화해 제안한다. 사용자가 그 전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 판단을 내보낸 채 “추천된 삶”을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이 제시하는 최적의 길이 곧 ‘좋은 삶’과 동일하다고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편리함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위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에서 살게 될까?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감시와 통제로 무력해진 수동적 미래도 가능하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쾌락과 편의가 과잉 공급되는 수동적 미래도 가능하다. 수동성의 형태만 다를 뿐이다.
여기서 내가 떠올린 것은 영화 [매트릭스]다. 영화 속 가상세계의 설계자인 ‘아키텍트’는 자신을 찾아온 주인공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6번째 세상이야.
이전까지는 행복과 기쁨만 있었지, 고통은 없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들은 고통이 없으니 쉽게 죽어나갔어.
세상이 쉽게 멸망했지.
그래서 이번 세상에는 고통을 추가한 거야.
영화 [매트릭스]에서 아키텍트
고통이 제거된 세계는 역설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웠다. 불편과 긴장, 저항과 선택이 사라질 때 인간은 세계와의 접촉면을 잃고, 결국 스스로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통찰은 꽤 의미심장하다.
결국 능동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이다.
편안함과 이윤만을 목적함수로 삼는 최적화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기술의 속도와 쓰임새를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
[AI 2041]이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은 선명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아니라, 기술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방향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