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 제의를 받다

프리랜서에서 인하우스로

by 채PD

“방송국이 네 개나 더 생긴다고?”

“그럼 프로그램도 훨씬 많아지는 거 아냐?”

“사람도 더 필요하겠네.”


2012년은 방송계에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바로 종합편성채널들이 동시에 개국을 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네 개 회사가.

TV조선, 채널A, MBN, JTBC.


당시 MB 정부는 미디어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아래 미디어법을 통과시켰고, 대형 신문사들의 방송 진출 길을 열어줬다.

당연히 기존 방송국들의 반발은 거셌고, 야권에서도 “미디어 활성화가 아니라 보수 언론에 방송 권력까지 쥐여준 셈”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던 제작진들, 특히 외주 PD들에게 종편 개국은 정치적 이슈 이전에 생업과 직결된 문제였다.

많은 PD들이 더 많은 프로그램, 더 많은 기회를 기대했다.

“그럼 처우도 좀 좋아지겠네?”

“방송국 갑질도 줄어들라나?”

콘텐츠 제작 기회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방송 권력의 분산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사실, 과거 지상파 방송국의 권력과 갑질은 정말 대단했다.

인하우스 PD들은 외주 제작진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하청업체 직원처럼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가 하던 프로그램의 프로듀서 중에는 가편실에 들어와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시사를 하던 담당 PD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그 양반, 이제는 퇴직했겠지.


종편 개국 당시를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지방 촬영을 나가 있던 어느 날, 카메라 감독과 숙소에서 개국 생방송을 보며 나눈 대화다.

“감독님, 앞으로 일이 더 많이 들어오겠네요.”

“그러게. 몸값도 좀 오르려나.”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개국 이후 제작 의뢰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다큐, 교양, 예능 가릴 것 없이 방송사들은 편성 구색을 맞추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방송사로부터 프로그램 제작 제안이 아닌 전혀 다른 제안을 듣게 됐다.

바로 본사로의 영입 제안이었다.


“아. 아예 들어와서 일하라고요?”


“프로그램 제작할 사람도 없고, 관리할 사람도 너무 부족해, 와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 만들어봐”


그 제의를 받고 나는 정말 깊이 고민했다.
당시 나는 이미 10년 차 PD였다. 제작 현장에서 가장 재미있게 뛰어다닐 연차이면서도, 슬슬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프리랜서 PD는 연차가 쌓일수록 몸값이 오르고, 그만큼 일이 줄어든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 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연차가 많아지면 외주 제작사를 차리거나, 아예 다른 업으로 옮긴다.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회사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덜컥 회사에 들어가는 게 맞는지도 고민이었다.
당시 나는 지상파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곧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나름 기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불확실하잖아.”
“종편도 큰 방송국이야.”
“방송국에 들어가야 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론칭할 수 있어.”


많은 선배, 동료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고, 장고 끝에 나는 결국 방송국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래, 하다가 아니면 나오자.’ 다만 여전히 프리랜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축하해.”
“잘됐다.”


주변에서는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10년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달려왔고, 이제는 큰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기회도 생겼다.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다가 아니면 나오지”라고 생각했던 회사 생활이 어느덧 13년째다.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도 여럿 만들어봤고, 다양한 제작사들과 협업하며 나름대로 아주 즐겁게 제작을 이어왔다. 덤으로 대학원에 다니며 학위도 땄구나.

당시의 선택에 만족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커리어 전환은 처음부터 계획된 선택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결과에 가까웠다.

조금은 낭만적인 해석이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고, 어떤 것은 그대로다.


과거처럼 방송국의 노골적인 갑질은 거의 사라졌다.

플랫폼과 채널이 다변화됐고, 개인 방송까지 가능해지면서 방송 권력과 정보 권력은 더 이상 소수에게만 있지 않다. 좋은 변화다.


제작 기회도 확실히 많아졌다.

종편 개국 당시 기대했던 것처럼 콘텐츠는 다양해졌고, 여기에 OTT까지 더해져서 시청자들은 이제 콘텐츠를 골라 보다 못해 너무 많아서 못 볼 정도이다. 역시 좋은 변화다.


다만 안타까운 점도 있다.

PD들의 처우와 보수, 제작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회가 늘어난 만큼 경쟁은 치열해졌고, 그 결과가 제작비 절감이라는 출혈 경쟁으로 이어졌다.

웃픈 현실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나 미디어 시장의 변화는 정말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다.

10년간의 외주 프리, 10년간의 방송사 CP

나는 20여 년 동안 프리랜서와 인하우스를 오가며 방송 산업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현장의 변화를 더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지?

서는 곳이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고.


다음 글부터는 인하우스 PD로서, 제작 현장을 ‘관리하는 위치’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한다.

같은 현장이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전 13화드디어 다큐 입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