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목소리, 물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들이, 오래 남는 질문을 남긴다

by 채PD

4살 딸아이는 공룡을 무척 좋아한다.

공룡뿐만 아니라 뽀로로, 오로라핑 인형들도 좋아하고 고고다이노 장난감들도 좋아한다.

종종 인형을 껴안고 잠들고, 친구처럼 말을 건넨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동물이나 사물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의식이 있다는 편협한 사고의 틀에 아직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을 단순한 배경이나 도구가 아니라, 나와 교감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든다는 것을 느낀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는 물론이요,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삶 속에서 침묵하는 사물과 배경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휩쓸리듯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앞만 보던 시선을 내려놓고 무심히 지나쳐온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삶을 조금 더 여유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사물의 목소리, 물음]은 사물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에세이다.

설정만 보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작가가 어깨에 힘을 빼고 써 내려간 문장들은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독자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의 핵심은 관찰의 태도다.

저자는 사물도 ‘보고 듣는다’는 상상을 통해 속도를 늦추고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제안한다.


사물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스스로 질문할 때,

그 물음은 결국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창문 : 투명의 역설

창문, 안과 밖을 잇는 투명한 경계.

존재하되 투명한, 마치 없음을 전제로 한 존재


창문은 먼지나 벌레가 묻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깨끗해서 없어 보일 때 가치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자신을 더럽혀줘야 존재가 드러난다.

우리 역시 누군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정체성이 선명해진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 휴지통 : 버려지는 것들을 위하여

“어김없이 오늘도 나는 무가치한 것들로 채워진다.”


버려진 가치들을 모아야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물건.

재미있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 폴더폰 : 김원강, 그 기억의 함

Q. 폴더폰으로 소통하던 시절의 감정과,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현재의 감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폴더폰 속 문자와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추억을 더듬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사진과 너무 많은 텍스트 때문에 오히려 과거를 찾는 일이 더 수고스러워졌다.

우습게도 그래서 예전보다 더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게 됐다.

우리의 변화는 기계 때문일까,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곱씹게 만드는 글이다.




말하지 않는 사물들이지만 삶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 질문들은 작고 사소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주변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색하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분명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가볍지만 여운이 짙다.

지친 현대의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권하고 싶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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