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자에서 관찰자로
신문을 태워야 했다.
머리로는 그게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이 안 움직였다.
<○○초 통학버스 전복.. 어린이 3명 사망, 다수 부상>
기사 제목이 눈에 쬐어 박혀 있었다.
어제 오후 3시 40분. ○○시 외곽 도로. 가드레일. 빗길. 전복.
어제 정민이 보낸 카톡이 떠올랐다.
[정민]
우리 회사, 이번에 초등학교 통학버스 안전 캠페인 맡았거든.
[정민]
담당자가 오늘 하루 종일, “사고만은 안 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더라.
“보지 말고 태워버려.”
1번의 목소리가 귀에 다시 울렸다.
“안 보면, 그건 그냥 종이일 뿐이니까.”
하지만 내 손에 들린 종이는,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버스 안에서 울고 있을 얼굴들이 겹쳐졌다.
나는 결국 폰을 집어 들었다.
[나]
선배님.
[나]
통학버스 기사 하나만, 같이 봐주실 수 있어요?
잠깐 뜸이 들었다가, 답장이 왔다.
[1번]
주소 찍어. 기사랑 같이.
나는 학교 주소와 기사 사진을 한 번에 보냈다.
답은 의외로 빨리 왔다.
[1번]
집 앞이다. 내려와. 오늘은 택시 말고, 내가 데려다줄게.
1번의 차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세차도 안 한 회색 중형차. 조수석에 비닐봉지와 캔커피 두 개가 굴러다녔다.
“네가 안 태울 줄 알았다."
1번이 한 손으로 캔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맨 처음 이런 기사 봤을 때.
‘지금 끊어버리면, 아무것도 안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이랑
‘근데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막아’라는 생각이 같이 오거든.”
1번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이퍼가 잔잔한 비를 밀어냈다. 기사에 쓰여 있던 “빗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근데 선배님은 왜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거예요?"
캔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물었다.
1번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내 쪽을 보지 않은 채 웃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쓸쓸한 웃음이었다.
“나도 한때는 너처럼 생각했어. ‘이걸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구나.’
그래서 구독 제안을 받았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했지.”
“그리고.. 실제로 살리셨나요?”
“살렸지.”
1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 아주 크게.”
그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걸렸다.
“어느 날, 사회면 구석에 이런 기사가 찍혀 있었어.
<○○초 통학버스 전복, 어린이 5명 사망>.
그때 나는 이미 ‘현장 관리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거든.
새로 들어온 수령자들 보고서 작성, 정산 리포트.. 그런 것들 정리해 주는 자리.”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 버스에 누가 타는지도 알았어. 옆집에 사는 애, 매일 복도에서 마주치던 꼬마.
가끔 사탕 던져주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던 애.”
잠깐,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옆집 아이를 살리신 거예요?”
“그래. 너처럼.”
1번이 씁쓸하게 웃었다.
“갑작스럽게 통학버스 앞에 끼어드는 것만으로도 사고 자체를 비껴가게 만들 수 있거든.
그날 버스는 겨우 미끄러졌다가 멈춰 섰고, 애들은 멀쩡히 집에 돌아갔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대신, 다음 날 기사가 하나 더 올라왔어.”
<○○병원 소아병동 정전, 인공호흡기 멈춰.. 어린이 1명 사망>
“거기에는, 내 딸 이름이 있었다.”
방 안 공기가 뚝 꺼진 것 같았다.
“우리 딸은 그때 이미 소아병동에 오래 누워 있었어.
평소 같으면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
“정산은 늘 맞춰져.”
1번이 중얼거렸다.
“내가 통학버스 다섯 줄을 지워버리니까, 어딘가에서 한 줄이 새로 생겼던 거지.
그게 숫자로 딱 떨어지는 건 아니고..
아마 내가 보지 못한 기사들까지 합치면 정산이 맞춰졌겠지.”
"..."
"그렇다고 이런 결과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 아이를 죽게 놔뒀을까?"
"아.."
“상상만 해도 괴롭지.. 내일을 아는 대가는 그런 거야.”
그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팩트 하나만 놓고 보면 그래.
나는 내 딸 대신, 옆집 아이를 살린 놈이야.”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1번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 이후로, 편집부랑은 거리를 두기 시작했어. 현장 관리자 자리도 내려놨고.
신문은 여전히 매일 오지만, 이제는 거의 안 봐. 가끔 제목만 훑고,
새로 들어온 수령자 중에 예전의 나처럼 굴 것 같은 놈이 보이면.
오늘 너처럼, 한 번쯤 옆에서 팔이나 붙잡아주는 정도지.”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니까 오해하진 마.
나는 정의로운 영웅이어서 널 도운 게 아니야.
이미 한 번, ‘내가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잘못 고른 인간이거든.”
1번이 핸들을 꺾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신문을 의도적으로 안 읽기 시작하니까
그랬더니 편집부에서 나를 점점 현장에서 밀어내더니,
결국은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걸로 보더라고.
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우연히 신문 부고 목록에서 네 이름을 봤을 때, 딱 알겠더라.”
“뭘요?”
“내가 예전에 했던 선택 때문에 너도 불행해질 수 있겠다는 걸.”
학교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통학버스 사고는 3시 40분. 지금 시각은 2시 50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사고를 기다리는 동안 1번이 길 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벌써 와 있네."
"네? 누가요?"
"구독자들."
“구독자들?”
“그래.”
1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 엄지로 반대쪽 길을 가리켰다.
정말로 도로 맞은편, 가로수 아래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데도, 하나도 젖어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회색 양복. 목에 스카프를 감은 중년 여성. 팔뚝이 두꺼운 남자.
포럼에서 봤던 바로 그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 넘어왔다.
“수령자 05번.”
회색 양복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말소 플래그 떠 있는 놈치고는.”
“먼저 인사라도 해야지.”
스카프 여자가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알겠지?”
“포럼에서 본 것 같긴 하네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관찰하러.”
팔뚝이 굵은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가 미래를 본다고 해서, 반드시 손을 대야 하는 건 아니거든.”
그가 버스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게 뒤집어지면, 10년 동안 전국 통학버스 예산이 늘어.
보험사, 제조사, 교육부, 다 움직이지.”
스카프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가 벌 수 있는 건, 대충 계산만 해도 꽤 크고.”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봤다.
“근데 네가 그걸 막으면, 우리가 깔아놓은 판이 다 바뀌어.”
회색 양복이 고개를 숙여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우린 모두 목숨 절반씩 내놓고, 이 시스템 위에서 걷고 있어.
그런데 공짜 티켓 가진 네가 판을 다 망치면서 뛰어다니는 셈이지.”
“그러니까, 저보고.. 가만히 보라고요?”
내가 물었다.
“아이 셋 죽는 거를?”
회색 양복이 허리를 펴면서 웃었다.
“우린 네가 뭘 하든 상관없어. 그냥 알고는 있으라는 거지.”
그가 이어서 말했다.
“너 하나가 버스를 막아서, 여기 있는 아이 셋은 살릴 수 있을 거야.
근데 그럼 다른 데서.. ”
그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숫자를 쓰는 시늉을 했다.
“몇 명이 더 죽을지, 우리는 알 수 있어.
프리미엄 구독 신문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스카프 여자가 이어 말했다.
“오늘 사고는 편집부도 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고요?"
"그래, 관찰자는 네 생각보다 많다"
팔뚝 굵은 남자가 덧붙였다.
“우리가 네 팔을 붙잡는 순간, 우리 쪽 장부에도 구멍이 생겨.
그래서 그냥 말만 하는 거야. 선택은 네 거라는 거.”
“우리가 다 막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신문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우린 ‘통제자’가 아니라, ‘참여하는 관찰자’ 정도로 계약돼 있으니까.”
그들은 정말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단지, 눈으로만 나를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구독자들을 차례로 훑어봤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
“저는 그냥, 눈앞에서 죽는 애들이나 막을게요.”
누군가 나를 따라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코웃음을 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되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바퀴를 움직였다.
나는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섰다.
“잠깐만요!”
운전석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클락션을 눌렀다.
“야, 뭐야 이 사람!”
버스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아이들이 의자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운전석 창문이 덜컥 내려갔다.
“저기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기사의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타이어, 이상한 소리 나던데요. 아까부터 덜컹거리는 소리 들렸어요.
바닥에 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네?”
“한 번만 확인하고 가시면 안 돼요?
오늘 비도 오는데, 애들 태우고 가다가 문제 생기면..”
기사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뒤에서, 어떤 엄마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도 아까 버스 올 때, 밑에서 찌익 소리 나는 거 같긴 했어요”
“맞아요, 저도 들었어요.”
엉겁결에 몇 명이 덩달아 거들었다. 아이들 안전 문제이니 엄마들이 예민해질 법도 했다.
운전기사가 욕을 삼키듯 들이켰다.
“에이, 별 일은 없을 텐데..”
그러면서도 결국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왔다.
그가 바닥으로 몸을 숙이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코너를 돌고 들어오던 흰색 SUV 한 대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버스가 있던 차선으로 파고들었다.
기사가 내려온 자리를 스치듯 지나간 SUV는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춰 섰다.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와, 씨..”
1번이 옆에서 낮게 탄식을 했다.
“봤죠?”
내가 그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오늘 예정된 건, 버스가 아니라 SUV였을 수도 있었어요.”
구독자들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그들은 그대로 서 있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들.
그저, 더 열심히 눈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도로를 채웠다.
아이들은 전원 무사했고, SUV 운전자는 경상인 듯 보였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 버스 세웠어요.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 어딘가.
— 시간 밖.
희미한 빛 아래, 무언가가 스르륵 페이지를 넘겼다.
[편집 기록 : 샘플 05]
예정 사건 : ○○초 통학버스 전복 – 사망 3, 부상 다수.
실제 사건 : 통학버스 긴급 정차 – 무사고. SUV 단독 사고 – 경상 1.
변동 폭 : 중간 이상.
장부 틀어짐 : 예측선 A 파기, B 생성.
샘플 상태 :
1. 샘플 05, 반복적 대규모 개입 패턴 확인.
2. 기존 샘플들과 다른 행동 양상.
3. 완전 삭제 대신, 환경 변수로 이관.
결론 : 샘플 05 : 관찰 강제 종료 처리.
— 어떤 손이 결재 도장을 찍었다.
집에 돌아온 건, 그날 저녁이었다.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 건 샤워를 마치고 난 후였다.
버스에 치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거실에 누워 있다가, 문 앞에서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사각.’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에는,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았다.
신문 대신, 배달 전단지 몇 장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늘부터, 안 올 거야.”
소리 난 곳을 돌아보니, 1번이 복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스토커예요, 뭐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상하게 반가웠다.
1번이 손에 들고 있던 신문 한 부를 내밀었다.
“내 쪽으로 온 거야.
넌 종료 플래그 찍힌 사람이라, 직접 배달은 안 되거든.”
신문 상단, 작은 박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 공지 : 수령자 05 – 관찰 강제 종료 처리>
그 아래, 더 작은 글씨.
‘※ 본 샘플은 더 이상 관찰 대상이 아니며, 향후 내일신문 배달 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관찰 강제 종료?, 그럼 다.. 끝난 건가요? 그런 방법도 있었나 보네요."
1번이 고래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원래 종료는 네가 신문을 다 태워야 되는 건데,
이번엔 위에서 먼저 손을 뗀 모양이야.
내가 끼어들어서 실험 케이스가 된 건지도 모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운 좋았어."
“결국.. 살려두긴 했네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살려둔 건지, 버린 건지 애매하지.”
1번이 어깨를 으쓱했다.
“완전히 지워버리기 아까운 샘플이라서, 샘플 탭에서 배경 탭으로 옮겨놓은 건지도 모르고.”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건 그래.”
1번이 웃었다.
“어쨌든 축하해. 넌 이제, 내일을 모르는 쪽으로 돌아간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내일을 모른다는 것.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 채, 그냥 오늘 잠들고 내일 눈 뜨는 일상.
“선배님은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1번이 신문을 들어 보였다.
“구독자는, 자연사하거나 말소되거나 둘 중 하나라니까.”
“그럼, 어제 버스 사건 때문에 문제 되진 않으세요?”
1번이 한숨을 쉬었다.
“기존 구독자들한테 욕은 꽤 먹겠지. ‘또 쓸데없이 판을 줄였다’고.”
그러면서도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근데 프리미엄 신문면을 보니까, 이번엔 나도 같이 실험 대상으로 묶여 있더라.”
“실험이요?”
“응.”
그가 창밖을 내다봤다.
“‘장부를 알면서도, 계속 인간 쪽 선택을 하는 구독자 1번의 장기 관찰’.
뭐 대충 그런 제목이 붙어 있을 걸?”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럼 선배님도, 결국 장난감이라는 소리네요.”
“원래부터 그랬어.”
1번이 말했다.
“다만, 예전엔 그걸 모르고 팔려 다녔고,
지금은 알고 버티는 중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어쨌든, 잘했어.”
1번이 짧게 말했다.
“미래를 모르는 인간 치고는, 꽤 비싼 선택을 했어.”
그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나는 한참 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그가 놓고 간 내일신문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것을 반으로 접어 서랍 안에 넣었다.
태우지는 않았다.
보지도 않을 거지만, 완전히 없애고 싶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정민에게서 카톡이 왔다.
[정민]
어제 뉴스 봤어?
우리 시범학교에서 버스 사고 날 뻔한 거
기사 안 난 거 같은데, 내부 보고로만 돌았나 봐.
심장이 살짝 뛴다.
나는 최대한 평범하게 답장을 쳤다.
[나]
그래도 진짜 안 나서 다행이다.
[정민]
오빠, 근데..
[정민]
혹시 또 그거야?
내일 신문 보고 움직인 거야?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정민은 이미 안다.
내가 ‘내일신문’을 받는다는 걸.
예전에 포럼에 가기 전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서 알고 있다.
[나]
아니. 이제 나한테는 안 와.
[나]
어제부로.. 끊겼어.
잠시 뜸.
곧장 답장이 왔다.
[정민]
그게 뭔 소리야.
[정민]
그게 오빠가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었어?
나는 화면만 멀뚱히 보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
어. 복잡한데,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나]
아무튼 이제 안 와. 진짜로.
정민의 말풍선이 한참 깜빡이다가, 메시지가 올라왔다.
[정민]
그래.
[정민]
솔직히 좀 무서웠어.
[정민]
오빠가 맨날 “이건 기사에서 봤어” 이러고 있으면
[정민]
내가 모르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조금 후.
[정민]
근데.. 이상한 일 하나만 더 말해줄까?
가슴이 살짝 당겼다.
[나]
응. 뭔데.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익숙한 로고.
익숙한 머리글자.
익숙한 폰트.
<내일신문>
"아니.. 이건.."
[정민]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우리 집 현관 앞에 이게 있더라.
[정민]
이거, 오빠가 말하던 그거 맞지?
심장이 두 번, 세 번 세게 뛰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민]
장난이면 진짜 죽여버린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
그게 왜 거기로..
[나]
퇴근하고 내가 갈게. 같이 보자.
아니다. 안 보는 게 좋겠다. 보지마!
[정민]
알았어. 손도 안 댈게.
[정민]
근데 한 가지는 말해줘.
[정민]
이거 보면 나도 오빠처럼 되는 거야?
[나]
나처럼??
[나]
꼭 나처럼 할 필요는 없어.
[나]
그리고, 네가 어떻게 할지는..
[나]
네가 정하는 거지.
잠시 후.
[정민]
아라써, 일단 와. 좀 무섭다..
그 말 끝에, 이모티콘 하나가 달렸다.
웃고 있는 얼굴인데, 어쩐지 불안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폰을 내려놓았다.
차를 몰고 정민의 집으로 가는 길.
머리가 복잡했다.
무대 바깥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다른 무대에서 다른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판의 샘플은 내가 아니라, 정민.
이번엔 내가 ‘관찰자’ 쪽에 서게 되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정민의 선택까지 대신하려 했을 거다.
손해를 막고, 위험을 줄이고, 장부에 덜 찍히는 쪽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엔.. 네 선택이겠네.’
그리고 처음으로,
내일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내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계산 대신 기다림을, 예측 대신 같이 불안해하는 쪽을 택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