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소와 종료 그리고 구독
“말소되거나, 빠져나가거나.”
1번이 말했다.
숨이 조금 가빴다.
방금 전까지, 나는 그냥 ‘살았다 죽었다’ 둘 중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빠져나간다”는 말은, 그 둘 사이에 아주 얇은 틈이 있다는 얘기였다.
“빠져나간다는 게.. 종료라는 거예요?”
내가 묻자, 1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종료. 이 시스템에서 완전히 손 떼고 나오는 절차.
편집부도 널 더 이상 샘플로 쓰지 않고, 장부에서도 네 이름을 지우는 것. ‘사고사’나 ‘말소’가 아니라, 그냥 ‘관찰 종료’로 처리하는 쪽이지.”
“그게 가능해요? 아까는 나 말소 예정이라면서요.”
1번이 캔커피를 굴리며 말했다.
“원래는 말소 플래그가 뜨면, 거기서 그냥 끝이야.
근데 네 경우엔, 내가 한 번 가로챘잖아. 아파트 화재에서.”
아까 계단에서 맡았던 탄 냄새가 다시 떠올랐다.
“이제 넌 편집부 입장에서 골칫거리고, 구독자들 입장에선 불량 변수야.
그래서 오히려, ‘깔끔하게 종료시키고 손 떼게 하는 쪽’이 서로에게 손해가 덜한 선택지가 될 수 있어. 확실하진 않지만..”
“그럼.. 종료를 선택하면, 진짜로 안 죽는 거예요?”
1번이 나를 똑바로 봤다.
“언젠가 죽긴 죽겠지.. 흐흐.
하지만, 종료를 선택하면 적어도 신문 때문에 죽지는 않게 되는 거지.”
그 말이 이상하게 실감 났다.
지금까지는 내 죽음이 어디까지가 ‘자연사’고, 어디서부터가 ‘기사용 사고’ 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게 뒤늦게 섬뜩했다.
“그럼 반대로, 구독자는요?”
1번 얼굴이 살짝 굳었다.
“구독자는 종료 못 해. 한 번 구독 계약하면, 끝까지 간다. 물론 자기 수명을 모르니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
“그래서 선배님은..”
나는 어느새 1번을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1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미 구독 YES라고 말한 사람이라, 이 판에서 나갈 순 없어. 그래서 택한 게 방관이지.”
그는 쓰레기통에 빈 캔을 던져 넣었다.
“신문은 여전히 매일 와. 근데 이제는 거의 안 본다. 가끔 제목만 훑고,
새로 들어온 수령자 중에 너무 위험해 보이는 애가 있으면.. 오늘처럼, 잠깐 손을 대는 정도?”
1번이 짧게 웃었다.
“포럼에 있던 애들 기억나지? 그 애들은 대부분 ‘판을 키운 쪽’이야.
나는 지금, 판을 줄이는 쪽으로 기우는 중이고.”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같은 편집부 아래에 있으면서도, 구독자들끼리는 이미 갈라져 있다는 느낌.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걸 만든 건데요?”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신문을 받았을 때부터 품고 살았던 물음이었다.
“그건 나도 몰라. 다만 ‘내일을 쓰는 손’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 정도?
그 이상은, 다음에 얘기하자. 지금 네한테 중요한 건,
누가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값으로 너를 지우려고 하느냐니까.”
그래. 1번이라고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또다시 물었다.
".. 그래도 아무한테나 막 뿌리진 않겠죠.
왜 하필 저예요? 왜 제가 수령자가 된 거예요?”
1번이 잠시 나를 보다가, 한쪽 벽구석에 쌓인 신문 더미 위에 걸터앉았다.
“일단, 신문은 경계에 선 놈들한테 가는 것 같아.”
“경계요?”
“망하기 직전 사업가,
뜰 것 같으면서도 못 뜬 예비 스타,
집을 날릴 수도 있는 투자 실패자,
때려치울까 말까 매일 고민하는 직장인,
헤어질까 붙잡을까 저울질하는 연애.”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한 마디로, 인생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지 애매한 놈들, 벼랑 끝에 서있는 놈들. 마치 너처럼.”
말문이 막혔다.
곧바로 포럼에서 만났던 구독자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1번이 말을 이어갔다.
“포럼에서 봤던 구독자들 기억나지?
회색 양복은, 한때 코스피를 반 토막 냈던 펀드 매니저였고,
스카프 여자는 선거 때마다 이름 바꿔가며 후보 뒤를 붙는 로비스트야.
팔뚝 굵은 애는 예전엔 격투기 선수였지. 승부조작이랑도 한참 엮였고.
수녀처럼 보이던 사람? 병원 침대 위에서 매일 기도만 하다가, 어느 날 이 신문을 받고 나서부터는
‘누굴 먼저 살릴지’ 직접 고르는 쪽이 됐고.”
1번이 씩 웃었다.
“다들 한때는 벼랑 끝에 서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
그리고 신문을 얻고 난 후에는 ‘정의’나 ‘가족’을 위해 썼다고 말하는 공통점도 있고. 흐흐
근데 장부를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다 자기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 가더라고.”
"..."
“그리고 한 가지 더.”
1번이 말을 덧붙였다.
“편집부만 너를 골칫거리로 보는 게 아니야.
포럼에 있던 애들 중 몇 명은, 네 이름이 말소란 걸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어떻게요?”
“오래된 구독자들은 가끔 장부의 귀퉁이를 훔쳐볼 수 있거든.
누가 샘플이고, 누가 곧 정리될 예정인지 정도는.
그래서 네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몇몇에겐 아주 불쾌한 변수야.”
1번이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종료를 선택하든 뭘 하든. 걔네들 중 몇 명은 네 선택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거다.”
나는 말없이 신문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5년 간의 취업준비, 편의점 야간 알바, 코인으로 재산 탕진..
나 역시 거의 벼랑 끝에 서있었다.
그리고 신문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는 그래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은 풀리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미래를 왜 미리 알려주는 거고, 또 왜 미래를 건드렸다고 말소를 하려는 거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요.
미지의 존재인 편집부가 나를 상대로 게임 같은 것을 즐기고 있는 건가요?"
“편집부는 미래가 바뀌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야.
안 바뀌면 장사가 안 되거든.
일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방향을 보고 ‘어느 미래로 갈지’ 골라 붙이는 시스템이야.
다만, 흔들려도 되는 폭이라는 게 있어.
누가 조금 더 벌고, 누가 조금 더 잃고, 교통사고 한 건 줄어들고, 한 명이 병을 좀 더 일찍 알게 되는 정도.
그건 다 ‘허용된 출렁임’이야.
근데 네가 한 짓은, 그 울타리 밖이야.
죽을 사람들을 통째로 살려서 사고 자체를 지워버렸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때부턴 편집부 입장에선 넌 ‘좋은 데이터’가 아니라, 모델을 망가뜨리는 오류값이야.
그래서 부고가 뜬 거야.
벌을 준다기보단, 틀어진 장부를 다시 맞추려고 한 줄을 통째로 지우는 거지.”
알 듯 말 듯한 설명이었다.
‘이미 정해진 비용을 누가 대신 치를지 고르는 장부에 가까운 건가..’
1번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착각하면 안 돼.
이건 운명을 고치는 마법이 아니야. 누가 더 비싼 대가를 치를지 계산하는 계산기지.”
"그런데 1번 선배님은 어떻게 이렇게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아시는 거죠?"
“흐흐.. 나는 조금 특별한 구독자였으니까.”
1번이 벽에 어깨를 기대고 말을 이었다.
“처음 몇 년은 편집부랑 제일 자주 연락하는 쪽이었거든.
새로 들어온 수령자들, 말소 사례, 정산 리포트.. 그런 것들 정리하는 ‘현장 관리자’ 비슷한 역할이었지.
그래서 이 시스템 구석구석을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거야. 그냥 오래된 직원이라 아는 게 좀 더 있다고 보면 돼.”
“그래서 앞으로, 내 선택지는 뭐예요?”
나는 결국 그 질문을 꺼냈다.
“말소, 종료, 구독, 정리 좀 해 주세요.”
1번이 손가락을 세 개 폈다.
“하나, 말소.
지금 이대로 두면, 편집부 장부에 찍힌 대로 어느 날 기사 한 줄 남기고 사라지는 거. 아파트 화재처럼.”
그는 다시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둘, 구독.
남은 수명 반을 내놓고, 대신 일반 수령자랑은 아예 급이 다른 정보를 받는 길.
지금 네게 오는 건, 네 동네, 네 계좌, 네 주변 사람들 정도지?
구독자가 되면, 나라 전체 판, 업계 흐름, 몇 년치 굵직한 사건들의 얼개까지 같이 묶여서 와.
게다가 1년에 한 번, 진짜 중요한 사건 하나에 이의제기를 걸 수 있는 창구도 있어.
‘이건 내 수명을 더 떼 가더라도 살려둬라’ 같은 거.항상 먹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수령자 땐 꿈도 못 꾸는 권한이지.
대신 그만큼 깊게 묶이는 거야.
정산이 들어올 때도, 수령자는 그냥 데이터 한 줄이라 통째로 지워버리면 되지만, 구독자는 계약 상대라 그렇게 쉽게 못 지워.
그래서 포럼 애들이 규칙을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야. 도덕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 계약 방어하려고.”
“그럼 저도 구독제안이 올 수 있나요?”
1번이 어깨를 으쓱했다.
“구독은 기본적으로 ‘관리 가능한 변수’한테만 제안하는 상품이야.
근데 넌 이미 장부를 너무 흔들었어.
사람을 너무 많이 살렸고, 그 와중에 말소 플래그까지 뜬 상태에서 중간에 나까지 끼어들어 시스템을 꼬아 놨고..
아마 구독 제의가 가긴 힘들 거다.”
그는 마지막 손가락을 폈다.
“셋, 종료.
신문을 전부 네 손으로 끊어내고,
편집부에 ‘이 인간은 더 이상 관찰/샘플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언시키는 프로토콜.”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절차는 단순해.”
1번이 캐비닛 맨 아래 서랍을 열더니,
검게 그을린 종이 조각 하나를 꺼내 보였다.
“신문이 도착했을 때, 그날을 포함해 그동안 네가 받은 모든 내일신문을 한 번에 찢어서 태워. 한 장도 남기지 말고. 그게 종료 의식이야.”
“그걸로 끝나요?”
“형식상으로는 그래.
실제로는, 그 행위를 하는 순간 편집부 쪽 장부에서 네 이름이 ‘샘플’에서 ‘종료’로 넘어가는 거고.
중요한 건, 그 이후로 너한테 내일신문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
나는 침을 삼켰다.
“선배님은 그걸 왜 안 하셨어요?”
1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말했잖아. 나는 이미 구독 계약을 했다고.
종료 프로토콜은 수령자 전용이야. 구독자는, 사라지는 방식이 딱 둘 뿐이거든.”
그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낮아졌다.
“자연사 거나, 말소되거나.”
“그럼.. 저는 종료를 선택해야만 사는 거네요.”
“응. 아마도 지금 너한테 남은 건 사실상 그거 하나일 거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밤이 늦어 있었다.
불은 이미 진압된 모양이었다.
복도엔 물 자국과 그을음이 남아 있었고 소방차 대신 청소차가 서 있었다.
현관을 여는 순간 발끝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사각.’
늘 그렇듯, 신문이 문틈을 막고 있었다.
“보지 말고 태워버려.”
1번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안 보면, 그건 그냥 종이일 뿐이니까.”
신문을 집어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도 신문을 구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것은 돈 때문은 아니었다.
돈이라면 이미 충분히 있었다. 물론 욕심을 내면 끝도 없겠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는 적지 않은 돈이 이미 통장에 있었다.
나를 망설이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영웅 심리였다.
“돈은 이미 충분하지?”
헤어지기 전 1번이 내게 했던 말이다.
“아마 너는 어제 계단 사건 같은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거다.
내가 사람들을 살렸다는 사실, 구독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조금 뜨끔했다.
“솔직히, 나도 그랬거든.”
그가 덧붙였다.
“구독하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실제로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린 날들’이 더 많이 생기더라고.”
웬일인지 1번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신문을 태워야 하며 고민하면서 내일신문을 펼쳤다. 그런데.
1면.
<○○초 통학버스 전복… 어린이 3명 사망, 다수 부상>
눈이 굳었다.
‘오늘 아침 7시 40분경, ○○시 외곽 도로에서
○○초등학교 통학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3학년 남학생 1명, 2학년 여학생 2명이 숨지고…’
글자가 잘 읽히지 않았다.
어제 정민이 보냈던 카톡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민]
우리 회사, 이번에 초등학교 통학버스 안전 캠페인 맡았거든.
시범학교 몇 군데 선정해서 프로그램 만든다더라.
[정민]
담당자가 오늘 하루 종일,
“사고만은 안 났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더라.
기사 하단에 작게 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정민이 말하던 시범학교 중 하나였다.
머리가 멍해졌다.
‘오늘 사고가 난 통학버스는 전날까지 진행된 안전 교육 프로그램의 마지막 대상이었으며..’
기사는 잔인할 정도로 담담했다.
“전날까지 진행된 안전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한 줄이, 어제 정민이 보냈던 이모티콘과 겹쳐졌다.
“구독하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실제로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린 날들’이 더 많이 생기더라고.”
1번의 말이 다시 메아리처럼 귓가를 때렸다.
신문을 태워 없애야 한다는 생각과,
이걸 본 이상 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서로 목을 조르듯 엉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