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료는 남은 수명의 절반입니다
1.
“나는 1번이야.”
그 한마디에, 잠깐 현실감이 끊겼다.
“1번.. 이요?”
“그래. 제일 먼저 받은 사람이 나야.”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후줄근한 점퍼, 낡은 운동화.
어디서 봐도 그냥 동네 아저씨인데, 들고 있는 신문 묶음만큼은 너무 익숙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너, 오늘 부고 봤지?”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네. 봤어요.”
“그럼 됐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 있으면, 네 부고대로 흘러갈 거야. 선택지는 둘 중 하나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 안에 남아 있거나, 나랑 지금 당장 내려가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현관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나는 신발을 급히 끌어 신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빨리.”
남자가 짧게 재촉했다. 남자를 따라 계단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칠 때, 버릇처럼 버튼을 누를 뻔한 손을 억지로 내려야 했다.
계단을 몇 층 정도 내려갔을까. 희미한 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 냄새나죠?”
내가 뒤돌아보자, 1번이 계단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아까 너한테 부고 뜬 거, 봤을 때 딱 감이 왔거든.”
“감이요?”
“사회면 귀퉁이에 작게 떴더라. <○○동 ○○아파트 야간 화재, 남성 1명 사망>
시간이 네 부고랑 정확히 겹쳤어.”
그가 씩 웃었다.
“난 이 신문을 꽤 오래 봐왔거든.
어떤 기사들이 ‘정산용 사고’인지, 이제는 냄새로도 맡아.”
그때였다.
콰앙~!
우리집이 있던 층 어딘가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우리집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곧이어 먼지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섞여 내려왔다.
“불이야!!”
“위층에서 불났대!!”
뛰어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우르르, 계단 전체를 뒤흔들었다.
1층 현관으로 나와 뒤돌아보니, 우리 집 외벽 쪽 창문 사이로 검은 연기가 슬쩍 올라오기 시작했다.
곧 경보음이 울렸다.
“삐—삐—삐—”
주민들이 우왕좌왕 뛰어나왔다.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 욕설, 비명, 사이렌 소리가 뒤섞였다.
집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경비원이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소방관들이 호스를 끌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1번이 캔커피 두 개를 사 와 하나를 내밀었다.
“자. 심장 진정제.”
“.. 감사합니다.”
캔을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설명 좀 해주시죠.”
내가 말했다.
“왜 날 살린 건지, 당신은 도대체 뭘 아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신문이 도대체 뭐길래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건지.”
1번이 캔을 눈앞에서 빙글 돌렸다.
“좋아. 그 얘기를 하려고 널 살려둔 거니까.”
남자는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먼저 구조부터 정리하자.”
1번이 신문 묶음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신문을 받는 사람들은 두 부류야. 지금 너 같은 수령자, 그리고 나 같은 구독자.”
“수령자, 구독자..”
“처음엔 다 수령자로 시작해.”
그가 말을 이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도착한 낯선 신문.
처음엔 다 의심하고 의아해하다가, 결국 하나같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그가 내 얼굴을 봤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까지 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또, 주식, 간판, 터널, 페스티벌 계단까지. 이미 해버린 일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보통 몇 달 정도 지나면, 편집부에서 슬슬 묻기 시작해.”
1번이 말을 이었다.
“‘계속 볼래?’하고 말이야.”
“계속 이 신문을요?”
“그래. 내일 신문의 정식 구독자, 일명 ‘Subscriber’로 승격하겠냐고 제안하는 거지.”
“수령자에서 구독자라..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요?”
1번이 신문을 톡톡 두드렸다.
“단순해져. 수령자는, 말 그대로 그냥 받는 사람이야. 신문은 오지만, 언제 끊길지 몰라.
규칙도 애매하고, 룰도 확실히 안 알려주지. 근데 구독자가 되면..
루틴이 생겨. 더 광범위한 판을 볼 수 있고, 편집부랑 어느 정도 ‘협의’도 가능해진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남은 수명 절반.”
말이 잠깐, 공기 중에서 멈춘 느낌이었다.
“.. 네?”
“구독료로 남은 인생의 반을 내놓는 거야.
대신, 그 반 동안은 거의 확정된 미래를 보게 되지. 대부분은 그 대가를 흔쾌히 내.”
“흔쾌히요?”
1번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린 다, 미래를 아는 대신 평범하게 늙을 권리를 버린 사람들이거든. 사람답게 죽을 권리를 판 셈이지.”
포럼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이 스쳐갔다.
회색 양복의 50대, 스카프를 맨 40대, 팔뚝이 터질 것 같던 20대, 수녀복을 입은 여인, 앳된 여학생까지.
“그럼.. 포럼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전부 구독자.”
1번이 잘라 말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규칙’을 떠들어댄 이유가 뭔지 알아?
도덕심이 투철해서가 아니야. 계약을 유지하려고 그랬던 거지.
신문의 정확도가 크게 깨지면, 그만큼 자기들도 ‘정산’ 대상이 될 확률이 높아지거든.”
그제야, 그들의 눈빛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경고라기보다, 자기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계.
“근데.. 전 그 ‘구독’ 이야기를 아직 들은 적이 없어요.”
나는 물었다.
“왜 저한테는 선택지를 안 준 거죠? 갑자기 ‘말소’니, ‘부고’니.. 그냥 정리부터 하려고 하던데요?”
1번이 한숨을 쉬었다.
“그건,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지.”
그가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켰다.
“너는, 너무 빨리 너무 많이 건드렸어.”
“대부분의 수령자는 처음 몇 달 동안은 복권 좀 맞고, 소소한 주식 수익 내고, 자기 주변 문제를 살짝 피하는 정도에서 머물러.”
1번이 말했다.
“그러다 질리거나, 겁이 나면 손 떼고. 아니면 서서히 구독 제안이 들어오고.”
“근데 전..”
“너는 시작부터 사람을 살렸지.”
1번이 내 말을 이어받았다.
“홍대 간판 사건. 정민이라는 여자를 길에서 한 번 빼냈고, 터널에서 예정된 사망자들을 죄다 막았고.. 이번엔 페스티벌 계단이었지. 이렇게 커다란 개입이 이어지다 보면, 편집부도 구독자들도 모두 피곤해져.”
“그게 나쁜 겁니까?”
“나쁘다고는 안 했어.”
1번이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게 스케일 문제라는 거지. 이 신문은 ‘예측지’가 아니야. ‘계약서’야.”
그가 신문 표지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내일이라는 페이지를 미리 인쇄해 놓고, 현실이 그 페이지를 따라가도록 계속 장부를 맞추는 시스템.”
“장부요?”
“어딘가에서 네가 사람 하나를 살리면, 어딘가에 죽어야 했던 한 줄을 지워버리는 거야.
그럼 장부가 틀어지지. 틀어진 장부는 언젠가 다른 데서 반동을 만들어.”
어제 하루 동안 우리를 따라붙었던 SUV 급브레이크, 떨어진 나사, 급발진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야 한다. 그게.. 정산입니까?”
“그래.”
1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부가 직접 사람을 죽이진 않아.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장부만 다시 쓰지. 그러면 현실이 알아서 거기에 맞춰서, 사고고, 질병이고, 우연인 척 벌어지는 거야.”
그는 내 어깨를 한번 흘끗 보았다.
“너는 그 균형을 너무 여러 번, 너무 크게 건드린 수령자야. 편집부 입장에선 귀찮고, 구독자들 입장에선 위험 요소지.”
“그래서.. 말소.”
내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말소.”
1번이 그대로 따라 말했다.
“원래라면, 구독 계약을 제안받고 네가 ‘예스’ 혹은 ‘노’를 말할 시간이 있었을 거야.
근데 네가 벌써 사람 몇 명 분량의 장부를 비틀어놨거든. 그래서, 제안 없이 바로 부고부터 찍힌 거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사람을 살려서 내가 잘못했다는 얘기네요?”
1번이 내 표정을 한참 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게 네 문젠 거지.”
“네?”
“질문을 그렇게밖에 못 한다는 거.”
그는 의자를 뒤로 살짝 밀었다.
“좋아. 그럼, 이제 두 번째 얘기를 하자.”
“나 좀 따라와.”
“어디요?”
“내 작업실.”
우리는 카페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빌라 한 채, 낡은 철제 현관문 앞에서 1번이 멈췄다.
“여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책상 하나, 작은 침대,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캐비닛.
1번은 캐비닛 서랍 하나를 열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가 훅 올라왔다.
“이게 전부..?”
“내일 신문.”
그가 말했다.
“내가 수령자로 살던 시절 것부터 구독자로 살면서 모은 것들."
나는 가장 위에 놓인 한 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상단엔 낯익은 로고, 바로 아래엔 어색한 연도가 찍혀 있었다.
“193○?”
제목은 흐릿했다.
<○○ 조선 ○○사령관 사망>
다른 신문을 한 장 더 빼냈다.
“196○년 비상계엄 선포..”
또 한 장.
“199○년, 대규모 시위, 외환위기.”
우리가 교과서나 뉴스에서 봐왔던 사건들.
“이 신문은 생각보다 오래됐어.”
1번이 서랍에 기대어 섰다.
“누구 말로는, 식민지 시절 어떤 독립운동가도 이걸 받았고, 어떤 총독부 관리도 이걸 받았대.
어떤 재벌은 외환위기 전에 이미 자산을 싹 빼돌렸고,
어떤 정치인은 쿠데타 날짜를 정확히 알고 움직였다는 소문도 있지.”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두 내일을 본 사람들이었을 수 있어.
누군가는 그걸로 사람을 살렸고, 누군가는 그걸로 기회를 훔쳤겠지.”
나는 신문들을 내려다봤다.
“그럼 역사는 전부..”
“위인 몇 명이 만든 영웅담이 아니라,”
1번이 내 말을 잘랐다.
“내일을 슬쩍 본 사람들의 선택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생긴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1번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
“내일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더라. 다만, 더 비싼 선택을 하게 될 뿐이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1번 님은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예요?
구독 제안이 어떻게 오는지, 누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이 신문이 언제부터 있었는지까지.”
1번이 잠깐 웃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쓸쓸한 웃음이었다.
“나도 한때는 너처럼, 그냥 구경꾼이었어. 신기해서 조금 벌고, 위험한 일 몇 개 피하고. 그러다, 구독 제안을 받았지.”
“그리고 예스라고 한 거군요.”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몰랐거든. ‘남은 수명 절반’이라는 게, 그냥 숫자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걸.”
“무슨 뜻이에요?”
“남은 수명이란 건,
네가 사랑할 수 있는 날들,
네가 후회할 수 있는 밤들,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버려도 되는 오후들까지 다 포함이야.”
그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를 향했다.
“나는 그 반을 잘라 줬어. 대신 아주 많은 걸 알게 됐지.
어떤 주식이 오를지, 어떤 정권이 언제 무너질지, 누가 내일 죽을지.”
“그리고요?”
“그리고..”
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내가 살렸어야 할 사람을 살리지 못한 날이 있었거든.”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편집부랑 계속 싸우고 있어.
내가 한 선택 때문에 죽은 사람들, 내가 ‘모른 척한 미래’ 때문에 무너진 사람들.
그 계산서가.. 아직도 안 끝났거든.”
그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널 봤을 때, 알았어. 또 하나의 말소 예정자, 또 하나의 정리 대상.
그리고.. 내가 예전에 버렸던 어떤 선택이, 조금 늦게 돌아온 거라는 걸.”
숨이 막혀서,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날 구한 거예요?”
겨우 물었다.
“후회 때문에요?”
1번이 입꼬리를 올렸다.
“후회도 있고, 편집부에 대한 빡침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실험도 조금 섞여 있지.”
그가 신문 한 부를 나 쪽으로 밀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 너는 구독자 후보가 아니라 말소 예정자라는 거야.
원래라면 없었어야 할 선택지를 하나 더 받게 된 셈이지.”
“선택지요?”
1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나는, 편집부 장부에 이미 찍힌 대로 조용히 지워지는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애초에 이 장부에서 빠져나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