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깨야하는 날
수령자 포럼이 끝난 뒤 며칠 동안은 최대한 얌전하게 살려고 했다.
돈의 스케일, 생명과 역사.
머릿속에서 그 두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소소하게 먹고사는 정도만.”
“사람은 건드리지 말 것.”
규칙은 단순했다. 못 지킬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주식 앱에서 몇 개 종목을 정리했다. 하루 수익을 줄이는 대신, 심장이 덜 뛰는 삶을 고른 셈이다.
정민과의 데이트도 최대한 평범하게. 카페, 영화, 동네 산책, 평범한 청춘들처럼.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많았지만 그래도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사각.’
문 앞에서 익숙한 소리가 났다.
“왔구나.”
늘 그렇듯 신문을 집어 들고 아무 생각 없이 펼쳤다가, 1면에 박힌 커다란 제목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청년 페스티벌 계단 인파 압사 사고, 5명 사망>
목이 바짝 말랐다. 나는 기사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어젯밤 8시 40분경, 서울 ○○광장 인근에서 열린 ‘○○ 청년 페스티벌’ 종료 후, 광장과 지하철역을 잇는 계단 구간에 관람객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부가 넘어져 연쇄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계단 하단부에 가장 먼저 쓰러진 20대 후반 여성 A 씨는 마케팅 대행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 청년 페스티벌? 마케팅? 20대 후반?”
손이 저릿해졌다. 순간, 어제 정민과 나눴던 카톡이 떠올랐다.
[정민]
내일 ○○ 페스티벌 올래?
우리 회사 클라이언트가 부스 내서 나 하루 종일 거기 있을 거거든!
정민은 얼마 전부터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신문 기사 속 ‘20대 후반 여성 A 씨’의 실루엣이 정민의 얼굴과 겹쳐졌다.
“아, 설마..”
가슴이 세게 쿵 내려앉았다. 기사 속에서 이름 없이 ‘A 씨’로 처리된 얼굴이 정민의 옆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다.
'아니겠지..?'
애써 아니라고 생각해 보지만, 수령자 포럼에서 들었던 말이 또렷하게 귓가에 울려 퍼진다.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을 계속 살려두려다 같이 끌려 들어간 사람들.."
"죽을 운명이라고? 이건 뭐 데스티네이션도 아니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스스로 들으며 씁쓸하게 웃음이 비틀렸다. 하지만 웃음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규칙 2. 생명과 역사는 손대지 말 것.
나는 신문을 다시 꽉 쥐었다.
“안 가면 되는 문제 아닌가?”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오늘 저녁에 정민만 안 보내면 된다. 약속을 깨버리게 하거나, 아프다고 거짓말을 시키거나. 하지만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사망자 A 씨는 행사 관계자와 함께 늦게까지 부스 뒷정리를 하고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정민의 말이 그대로 겹쳤다.
- 나 어차피 회사일이라 하루 종일 있어야 해
거의 피할 수 없는 자리. 내가 말린다고 회사가 행사를 취소해 줄 리도 없다.
그러면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거나, 내가 또 개입하거나.
신문 모서리가 손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 위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래. 규칙이고 뭐고.. 이걸 모른 척할 수가 없잖아!”
하루 종일 하늘은 평화로웠다. 너무 평화로워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오빠, 여기!”
정민이 광장 입구에서 손을 흔들었다. 회사에서 나눠줬다는 굿즈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 진짜 많네.”
푸드트럭 줄, 포토존, SNS 이벤트 부스, 버스킹 무대. 곳곳에서 음악과 사람 소리가 엉켜 올라왔다.
나는 무대 옆쪽을 힐끔 봤다.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과 똑같은 구도였다. 광장 한쪽 끝. 지하철역과 이어지는 좁은 계단,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동시에 몰리면 금방 병목이 생길 것 같은 구조. 계단 아래쪽에는 철제 펜스가 임시로 설치되어 있었다. 기사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오빠?”
정민이 내 시선을 따라 계단 쪽을 봤다.
“왜, 거기 위험해 보여?”
“그냥.. 구조가 별로다. 저기 나중에 사람 몰리면 답 없겠다.”
“안전요원 있겠지, 설마~”
정민은 가볍게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행사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푸드트럭 음식도 나쁘지 않았고, 무대에 오른 인디 밴드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내내 숫자 하나에 고정돼 있었다. 밤 8시 40분. 기사에 적혀 있던 사고 발생 시각.
어느덧 시간이 됐다. 8시 30분.
곧 있으면 사회자가 “이제 안전하게 귀가하시라”는 멘트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안전요원 조끼를 입은 스태프 쪽으로 향했다.
“저기요.”
“네, 관람객 분?”
“저 계단 쪽, 통제 안 하면 진짜 사고 납니다. 지금도 사람 꽉 찼는데, 저대로 두면..”
“아, 괜찮습니다. 저쪽에도 인력이..”
스태프는 건성으로 답했다.
“아니요, 저런 구조에서 사고 난 거 기사로 봤다니까요. 퇴장 동선 제대로 안 잡으면..”
나도 모르게 '기사에서 봤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고객님, 걱정 감사한데요. 저희도 매뉴얼이 있어서..”
매뉴얼.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매뉴얼대로 하면 사고 난다고요.”
스태프는 나를 한 번 더 보더니, 다른 쪽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서 화장실 위치 물어보시네요!”
“아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기 빨간 조끼 입으신 분께 한 번 더 말씀해 주세요.”
그는 이미 다른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는 안 먹히는구나.’
어차피 이 정도로는 안 막힌다는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계단 옆 안전 펜스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저기요!!”
“뭐 하시는!”
옆에서 경호 요원이 눈을 부릅떴다.
쾅—
나는 일부러 펜스를 한쪽으로 세게 기울였다. 철제 구조물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야! 위험해!”
“펜스 넘어간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계단을 계속 채우던 인파의 흐름이 잠깐 끊겼다.
그 틈에 나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악을 썼다.
“여기 계단 지금 위험해요! 내려가지 마세요! 내려가지 말라고요, 제발!”
“뭐야 저 사람?”
누군가는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봤고, 누군가는 그 소란 덕분에 발을 멈췄다.
뒤쪽에서 또 다른 안전요원이 뛰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사람 너무 많이 몰려요! 지금 그대로 다 내려보내면..”
바로 그때, 계단 아래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밀지 말라니까요!”
“앞에서 사람이 넘어졌대!”
순간 공기가 싸늘해졌다. 안전요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전체 계단 통제! 통제!”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지하철 쪽 출입구 잠깐 막아! 여기도 사람 통제해!”
“이쪽 관람객 분들! 잠시만 멈춰 주세요! 계단 쪽 정리부터 하고 이동하겠습니다!”
막혔던 물길이 겨우 방향을 트는 것처럼, 사람들의 흐름이 다른 쪽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세 명이 주저앉아 있고, 누군가는 발목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신문에서 봤던 그 문장, '5명 사망’에 어울리는 참사는 아니었다. 당연히 정민도 내 옆에 무사히 서있었다.
“오빠, 뭐 하는 거야 진짜!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정민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가자.”
나는 정민 손을 덥석 움켜잡고 광장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금 가야 해. 지금 이 순간, 이 동선만큼은 신문에 안 적힌 길로.’
집에 돌아오는 길, 정민에게는 “신문에서 본 게 있어서 그래.”라고 대충 둘러댔다.
정민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지만, 신문 기사라고 하니 끝내 더 묻지는 못했다.
“그래.. 오빠 말 듣길 잘한 거겠지.”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들이 죽었고, 그중에 너도 있었어.”
그 말은 차마 못 했다.
집에 들어와 침대 위에 그대로 뻗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눈꺼풀이 그대로 감겼다. 잠에 빠져들면서 포럼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죽을 사람을 계속 살려두려다 같이 끌려 들어간 사람들.."
다음 날 아침.
‘사각.’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묵직하게 들렸다.
나는 손을 씻고 나와, 제일 먼저 신문부터 펼쳤다.
역시나 1면은 달라져 있었다.
<○○ 청년 페스티벌 계단 소동.. 관람객 일부 경상>.
“하긴, 그렇겠지.”
나는 조용히 웃었다.
사망 5명짜리 참사가, ‘소동’으로 축소된 것이다.
내일신문은 사건이 변경, 축소되어도 기사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이 작은 소동도 1면에 남아있었다.
문제는 그 아래였다.
‘ㄴㄴㅐㅐㅇㅣㄹ 밤 8시 40분경, 서울 ○○광장 인근에서 열ㄹ리는.. 청년 페ㅔ스티벌 종료 후, 광장과 지하철역을 잇는 계ㄷㄷ단 구간에 관람ㄱㄱ갹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며 일시적인 혼잡이 빚어졌ㄷ다. 안전요원의 ㅊ신속한 ㄷㄷ개입으로 중상자 없음.’
글자가 개판이었다. 자간은 들쭉날쭉하고, 줄 하나는 옆 기사와 겹쳐 인쇄되어 있었다. 잉크가 번진 자리들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기사 하단, 작은 단신 칸. 눈에 이상한 문장이 들어왔다.
<수려ㅇ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자 05, ㄱ과도 개입 ㄱ경고 대상 ㄷㄷ등록>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째에야 겨우 의미가 잡혔다.
“수령자 05, 과도한 개입, 경고 대상 등록.”
나였다.
신문이 벽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완전히 나를 보고 있겠네.”
누군가, 어딘가의 ‘편집실’에서 내가 어젯밤 한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 시장이 출렁이거나
- 죽을 사람이 안 죽거나
그럴 경우 ‘정산’이 들어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정산.
단어 하나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그날 하루, 정민과 함께 있는 내내 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신호를 지키고 천천히 걷는 우리 바로 앞에서 회색 SUV 한 대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어, 씨—!”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못 봤습니다!”
정민이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우리 방금.. 치일 뻔한 거지?”
카페에 들렀을 때는, 위층 간판을 고치던 인부가 실수로 작은 나사 하나를 떨어뜨렸다.
짤깍—
그게 내 어깨 바로 옆 벽을 스치고 튕겨 나갔다.
“오늘 왜 이래, 진짜?”
정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길한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소리였다.
저녁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바로 옆에서 들어오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부르릉—!’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야!”
운전자가 급히 핸들을 꺾어 벽에 부딪혔고, 차 앞범퍼가 살짝 찌그러졌다.
우리 차는 겨우 몇십 센티 차이로 그 차와 스쳐 지나갔다. 정민이 조용히 물었다.
“오빠.. 이거, 우연 맞지? 오늘 정말 이상하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연이라고 치자. 아니면 오늘 밤, 우리 둘 다 잠 못 잘 것 같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는 한 단어만 맴돌았다.
정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려둔 목숨’과 ‘틀어버린 미래’의 값을 차분히 계산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계산서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 그런 불안감이 온몸을 감쌌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부터가 진짜 죽을 짓인 건데.”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다음날.
신문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박스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부고 : 수령자 05 — 공식 기록에서 말소됨>
손가락이 멈췄다.
“.. 뭐?”
글자가 살짝 깨져 있었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부고.
수령자 05.
말소됨.
“내가.. 죽는다는 거야?”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소.
죽음인지, 실종인지, 탈락인지. 뭐가 됐든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기록에서 지운다’는 말은 그냥 죽는 것보다도 더 섬뜩했다. 마치 애초에 없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 같았다.
나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방 안의 모든 것이 이상하게 낯설어 보였다. 책상, 침대, 옷걸이, 벽에 걸린 거울, 그리고 거기에 비친 내 모습까지.
“죽을 사람을 계속 살려두려다 같이 끌려 들어간 사람들..”
포럼에서 들었던 말이 또다시 떠올랐다. 정민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광장 계단 위, 내 손을 잡고 있던 온기. 횡단보도, 벽을 스치고 지나가던 나사, 지하주차장, 급발진 차량의 헤드라이트..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을 때였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구지?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갔다. 도어 스코프 너머로 복도를 훔쳐봤다. 낯선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대략 50대? 후줄근한 점퍼 차림. 그의 손에는, 너무나 익숙한 모양의 신문 묶음이 들려 있었다.
“..”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문을 반쯤 열었다.
“누구세요?”
남자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차림은 허름했지만, 눈빛은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치 나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담담했다.
“오랜만에 새 얼굴이 나왔다길래 얼굴이 궁금했는데 아주 젊은 친구구만.”
그가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남자가 아주 짧게 웃었다.
“나?”
그가 말했다.
“나는 1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