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실패는 없다. 이번엔 예능이다!

같이 할래? GG

by 채PD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1인칭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으면 화면에 뜨는 문구다.

2018년의 나는, 저 문구를 보기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다.

학창 시절에도 포트리스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PC 게임을 하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이렇게 게임에 빠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방송으로 만들면 어떨까?’

'서해에 무인도 하나 잡아서 50명 풀어놓고, 페인트총으로 서바이벌하면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음..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겠는데..'


뭐, 이런 허황된 상상까지 포함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소재로 방송을 만들어보겠다는 기획을 시작했다.


PD가 가장 신날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혹은 관심 있는 주제로 방송을 만들 때일 것이다.

[최강야구, 불꽃야구]를 만든 장시원 PD는 롯데 자이언츠의 골수팬이다. 야구를 진짜 좋아한다.
그 결과는 시청률 고공행진이다.

[강철부대]를 만든 이원웅 PD 역시 밀리터리 덕후다. 군사 장비와 전술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그 결과가 프로그램이 됐다. 물론 히트 쳤다.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로 방송을 만들고, 그게 또 히트까지 치는 것.

대부분의 PD들이 꿈꾸는 장면이다.

나 역시 그땐 확신에 차 있었다.

‘그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걸로 한번 가보자.’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건
‘게임으로 도장깨기, 전국 고등학교 투어’였다.


프로그램 제목은 [같이할래? GG].

게임을 좋아하는 연예인 다섯 명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찾아가 학생, 선생님 팀과 게임으로 맞붙는 예능이다.

연예인은 데프콘, 신동, 이용진, 김소혜, NCT 재민을 모았다.


왜 하필 고등학교냐고?

게임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열광하는 유저들이 바로 고등학생이니까.

그리고 선생님들도 사실.. 과거엔 게임 좀 했잖아?

보글보글, 너구리, 갤러그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까지.

학교 다니면서 게임 한 번 안 좋아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설정은 이거였다.

학생과 선생님이 한 팀이 되자! 하루만큼은 공부 대신 게임으로 놀아보자!

스트레스도 풀고, 조금 더 가까워지고, 조금은 서로를 이해해 보자.

아,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고, 교육적(?)이기까지 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기획안은 사내 공모전에서 1등을 했고 제작에 들어갔다.

2년 전 [유쾌한 삼촌]으로 고배를 마셨던 나는 이번엔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첫 촬영지는 민족사관고등학교였다.

공부로 전국구인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한 팀이 되어 게임을 한다?

이보다 상징적인 첫 회가 있을까 싶었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설득했고, 선생님들 앞에서 PT도 했다.

공부 잘하는 민사고가 첫 회로 나가자 다음 학교 섭외도 술술 풀렸다.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카트라이더 그리고 내가 사랑한 배틀그라운드까지.

게임도 원 없이 했다.

학생들은 열광했고 선생님들도 환호했다.

촬영 현장은 말 그대로 불바다.


“와, 분위기 진짜 좋다.”
“이거 진짜 잘 될 것 같은데?”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학교뿐 아니라 군대, 회사 등.

어디든 하루쯤은 다 같이 놀 수 있는 곳이라면 시즌제로 쭉 가도 되겠다는 행복한 상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청률은 어떻게 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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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살. 났다..


시청률은 처참했고 프로그램은 12회 만에 종영했다.


이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재미가 덜했다.

게임이라는 소재는 TV에겐 너무 젊었고,
나는 ‘게임을 설명하려’ 들었지, ‘즐거움을 전달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쟤네는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야?”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했던 내가 가장 답답했다.

그냥 즐거워 보이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지..


하여간, 한마디로 말하면,

잘! 못! 만들었다..

아.. 아쉬워라~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제작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모든 PD에게는 ‘언젠가 꼭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그걸 만들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고, 만든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방송을 만들어볼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큼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프로그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함께 고생한 제작진들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다. 진심으로.


[같이할래? GG]가 종영했을 무렵,
나는 어느덧 17년 차 PD가 되어 있었다.


‘아.. 나한테 또 기회가 올까..’

이제는 제작기회는 둘째 치고, 회사에서 '너 나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뒤.


기적처럼,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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